예전에 잡지 정기구독을 종종 했었다. 예전이라기보다는 재작년까지만 해도 빅이슈를 정기구독했었다. 정기구독보다는 그때그때 내가 보고 싶은 잡지를 사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하지만.
최근 인스타그램에서 죽치고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이런저런 트렌드(?)들을 접하고 있는데 과자, 액세서리 정기구독도 있더라.
식자재 정기구독은 괜찮아 보여서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는데, 과자나 화장품, 액세서리 정기구독 같은 건 스스로 고를 수 있는 즐거움을 빼앗기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이 골라서 보내 주는 것.
내가 매장에 가서 고르는 즐거움, 내 취향에 맞는 제품을 내가 고를 수 있는 권한을 남에게 양도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사람들은 이런 서비스로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아니면 어차피 매장에 가서도 요즘 잘나가는 거 뭐냐고 물어 보고 그걸 택하던 사람들이 이런 서비스를 이용하는 걸까.
자기가 직접 고를 수 있어도 남들의 선택을 따라 하는 사람이라면 애초부터 남이 골라 주는 서비스가 참 편하게 느껴지겠다는 생각이 들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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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권 표지. 한 권에 천 엔이 넘는다. 올컬러라서 비싼 듯...

선배는 남자 아이... 일본 만화책 사서 다 봐야 하나 싶기도. 쿠키에 돈 쓰기는 싫고...;;;
류지랑 잘되길 바랐는데... 귀여운 걸 좋아하니까 사키를 좋아하는 게 당연한 걸지도. 그리고... 같이 있으면 즐겁고 지켜 주고 싶어지는...? 내가 힘들 때 날 위로해 줄 수 있고 상대방이 힘들 때는 내가 보듬어 주고 싶어지는... 음...
자기 주장 강하고 자기 표현 잘하는 사람들이 역시 사랑도 받는 건가 싶기도 했다.
ㄴ끝까지 못 봐서 나무위키를 찾아봤다. 근데 일본 사이트 찾아봤더니 셋 다 각자의 길을 간다던데... 뭐가 맞는 거지...? 역시 단행본을 봐야 하나...
...
종종 드는 생각인데... 저렇게 좋아하는 사람을 못 만나는 사람은 그냥 혼자 사는 건가 하는...
혹은 저렇게까지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적당히 마음에 들고 스킨십 등 거부감 들지 않으니 사귀는 사람들... 난 이건 무리라는 걸 깨달았지만. 영혼이 텅 비어가는 게 느껴지더라.

류지가 너무 좋아서 쿠키 100개 받은 거 다 써서 오십 몇 화까지 봤다. 저녁 먹고서 새벽 1시까지...
사람이 살면서 누군가를 저렇게 좋아하게 되는 일이 몇 번이나 있을까.
한 번도 없는 사람도 있을 거고.
난 딱히 누구랑 사귀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손 잡고 싶다거나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거의 없다. 그런 생각하면서 설레 본 적이 없다...
(나 손 잡고 설렜던 적 한 번이 방금 떠올랐는데... 음... 그냥 친구였다. 지금은 연락 안 된다. 잘 살고 있겠지.)
성추행 당한 적이 많아서 트라우마 때문에 내가 내 마음을 억누르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드는데 그런 건 아닌 것 같고...

내가 좋아했던 사람이 있었던가... 최근 들어 많이 생각해 봤었다.
좋아했던 게 아닌 것 같은데-라는 결론이 늘 나더라.
되짚어 올라가고 올라가니 동창 중 어떤 애를 좋아했던 것 같은데 잘 모르겠다. 그냥 생각하면 설렜었다.
... 손을 잡아 본 적이 한 번 있다. 그냥... 어쩌다 보니 손을 잡았었다. 그게 다다. 허허허. 위에 쓴 설렜던 친구. 허허허.

그 외에는... 나를 좋아하는 것 같아서 내가 나도 모르게 맞춰 준 적이 좀 있고... 못되게 굴게 된 적도 있었고...
음... 이건... 나로서도 참 쓸쓸한 일.
나를 좋아하는 건지 아닌 건지 확실치 않은데 내가 뭔 반응을 어떻게 해야 하나 싶고 그렇다고 내가 좋아하는 게 아닌데 호감을 표시하기도 그렇고.
상대방이 다가왔다 멀어지면 울화가 치밀어. 네가 뭔데 멋대로 다가와서 나한테 이러쿵 저러쿵 하고서는 네 맘대로 떠나가는데? 싶어서. 차라리 고백을 했으면 바로 거절했을 테고 얘가 나한테 왜 이러지 하면서 마음 고생하는 일 없었을 텐데. 뭐 이런 생각... 이기적인 생각이지.

내게 좋아한다고 해 준 사람... 내가 밀어낸 적이 있고.

어렵구나.

류지... 류지 나랑 사귀자!고 하기엔 난 마코토가 아니지.
류지 같은 사람 어디 없나. 있어도 날 안 만나 주겠지만. ^-ㅠ
류지... 너무 좋아. 어허허. 오랜만에 만화 캐릭터에 푹 빠짐...

사랑에 빠지고 싶다...
그러나 현실에 류지가 있을 리 없지.
그리고 내 취향... 독특한 건가. 모르겠다. 잘생겼다고 설레는 것도 아니고...
아무튼...
류지야, 사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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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직 안 돼서 뭐하고 사나 할 때 쓴 글인 듯...



‘인간의 모든 문제는 인간이 먹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다는 데서 비롯한다.’
밥을 굶은 지 사흘째 되던 날 유미는 생각했다. 유미가 회사를 관둔 지도 벌써 반년이 지났다. 처음 한두 달은 뭣도 모르고 그간 못 했던 일들도 하고 해외여행도 한 번 다녀오고 그러다 보니 평소 회사 다니던 때보다 돈을 훨씬 더 많이 써 버렸다. 아껴 쓰면 1년을 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돈이 두 달 만에 반으로 줄어들자 유미는 약속을 잡지 않게 되었다.
유미는 저번 달에 통신 계약을 해지한 스마트폰을 들고 집 근처 체육공원에 나와 와이파이 신호를 잡았다. 당장 돈을 받을 수 있는 일용직 아르바이트를 알아봐야 한다. 아니면 기본적으로 밥을 주는 음식점 일이라거나. 차비가 들면 안 되기에 되도록 가까워야 하고 복장 규정이 있어서 옷을 사야 한다거나 하면 안 된다.
평일 오전, 공원에 나와 있는 젊은 사람은 유미뿐이었다. 연세가 지긋해 보이는 어르신들이 어렵지 않은 운동기구를 이용하며 시간을 보내거나 손자와 놀아 주고 있었다.
유미는 식수대에 가서 물을 마신 후 아르바이트 사이트에 접속해 지역을 설정하고 화면을 훑었다.
‘<편의점 평일 오전> 하루 6시간, 식사 제공’
걸어서 5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 식사 제공이라고 해 봤자 폐기된 도시락을 먹을 수 있는 정도겠지만 그게 어딘가.
“안녕하세요. 아르바이트 모집한다는 글 보고 왔는데요.”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던 사장은 안경을 고쳐 쓰며 유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 그래요.”
손님 한 명이 들어왔다.
“잠깐만 기다려요.”
“네.”
손님은 담배 한 갑을 사서 금방 나가 버렸다.
“어디 살아요?”
“체육공원 근처요. 걸어서 5분 정도 걸려요.”
“아, 좋네. 나이는?”
“서른이에요.”
“음, 결혼은 안 했어요?”
“네.”
“서른이면 취직을 해야지, 왜 알바를 하려고 그래?”
“예?”
들어가는 회사마다 서열에 따른 사내 정치에 적응을 못 해서 관뒀다는 말을 해야 할까. 유미는 지속적인 관계, 관계 유지를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하고 싶었다.
“언제부터 일할 수 있어요?”
“언제부터 일하면 되는데요?”
“그럼 오늘부터 해 볼래요? 알바생이 원래 오늘까지 나오기로 했는데, 어제부터 갑자기 못 나오게 됐다고 해서. 지금 내가 있으니까, 일 어떻게 하는지 보고. 내일이나 모레부터는 혼자 하고.”
유미는 얼떨결에, 생각보다 쉽게 일자리를 구했다. 유미가 찾아간 시간이 마침 오후 1시 50분쯤이어서, 사장은 2시부터 5시까지 세 시간 동안 일을 하라고 했다. 유미가 내일부터 일해야 하는 시간은 새벽 6시부터 낮 12시까지 6시간이다. 오늘의 두 배씩 일주일에 5일간 일을 하면 된다.
유미는 세 시간 동안 사장님을 따라다니며 관찰했다. 편의점 일은 손님이 오면 인사하고 계산하고, 바코드를 찍고 화면에 나오는 대로 진행하고, 물건이 빠지면 채워 넣고, 손님이 뭔가를 먹고 어지르고 가면 치우고, 그런 당연한 것들뿐이었다. 손님은 오래 머물러야 20분 정도였고, 한꺼번에 많이 와 봐야 4~5명이었다. 유미는 이 정도 일이라면 나도 충분히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수고했어. 내일부터 6시에 나오면 돼. 근데 밥은 먹었어?”
“아, 못 먹었어요. 인터넷으로 찾아보고 바로 오느라.”
“식사는 손님 없을 때 눈치껏 폐기한 거 아무거나 먹으면 돼. 삼각 김밥, 샌드위치, 도시락 뭐 이것저것 있는데, 폐기한 건 폐기 찍어서 창고 냉장고에 넣어 놓거든? 이리 와 봐.”
사흘째 굶은 유미의 눈에는 폐기 냉장고가 고급 뷔페처럼 보였다, 라는 건 거짓말이지만 어쨌거나 침이 꼴깍 넘어간 건 사실이었다.
“알바가 안 먹으면 어차피 버리니까, 먹고 싶은 거 있으면 가져 가.”
유미는 마음 같아서는 다 들고 가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삼각 김밥 두 개와 샌드위치 하나를 고르고서 이 정도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내일 올 때 등본이랑 통장, 이력서 들고 오면 돼. 늦지 말고.”
“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유미는 편의점에서 나오자마자 삼각 김밥 하나를 뜯었다. 삼각 김밥과 샌드위치가 든 편의점 봉투를 손에 들고 차디찬 삼각 김밥을 먹으며 집으로, 아니, 체육공원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너무나도 가벼웠다. 실은 너무 어지러워서 몸이 제 몸 같지 않아 발이 들썩이는 것이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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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15년 전쯤에 쓴 글인 듯. 실화 기반. 지금 내 꼬라지를 봐도... 다단계는 안 하길 잘한 게 맞는데... 허허. 참... 이때 이 분들은 뭐하고 계시려나. 다들 나보다는 잘살고 있을 듯하다는 생각도 들고. 어쨌든 자기 확신이 굉장히 투철한 사람들이었으니까. 성공에 대한 욕망, 삶에 대한 집착. 이런 게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차이...



“너 같은 애는 이거 안 하면 창녀밖에 할 게 없어.”
나는 팔뚝만 움켜쥐었다. 피가 흘러내렸다.
며칠 전 나는 영희 언니의 손에 끌려 이곳에 발을 디뎠다. 무슨 설명회를 한답시고 조그만 방에 수십 명을 몰아넣고서는 서너 명이 돌아가며 자기 자랑을 강의랍시고 해 댔는데, 사람만 바뀌고 내용은 같은 그 이야기들을 듣자마자 나가고 싶었지만 영희 언니가 조금만 더 들어보라며 붙잡는 바람에 그냥 남아 있었다. 강의가 끝나기도 전에 나간 사람이 1/4, 강의가 끝나고 나간 사람이 또 1/4, 하루 뒤 나간 사람이 또 1/4. 아직도 남아 있는 사람들 중 아직도 계약서에 사인을 하지 않은 사람은 나뿐이다.
영희 언니와 안 지는 2년 정도 됐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매일 아침 라디오를 듣다가 사연을 보냈는데 연극 입장권을 준다고 했다. 한 장이면 되는데 두 장을 준다고 했다. 학교에서 같이 밥을 먹거나 같이 수업을 듣는 동기는 있었지만 주말에까지 만날 수 있는 동기는 없었다. 공짜 표인데 팔기도 그래서 인터넷 연극 동호회에 같이 갈 사람을 구하는 글을 올렸더니 언니에게서 연락이 왔다. 어차피 남는 표였지만 내 덕에 공짜로 연극을 보는 건데도 언니는 고맙다는 말을 한다거나 밥을 산다거나 하지 않았다. 평소에 받는 걸 어려워하는 터라 크게 신경쓰지는 않았지만, 보통 사람들과는 약간 다른 언니였다. 잘 나가는 회사에 다니고 있다고 만날 때마다 자랑을 하면서도 밥을 한 번 사기는커녕 늘 돈이 없다고만 해서 오히려 내가 밥을 산 적이 더 많았다. 방학 때 고향집에 놀러오기도 했다. 전국 여행 중이라며 찾아온 언니에게 부모님은 여비로 쓰라며 돈까지 쥐여 주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에는 나도 그만한 돈을 용돈으로 받은 적이 없는데도.
내가 언니에게 뭘 받았는지 따져 보면 딱히 받은 건 없었다. 뭘 받았는지 뭘 줬는지 따져 보면 인간관계라는 게 너무 끔찍해지는 것 같아서 의식적으로 따져 보고 싶지는 않았다. 만나고 싶어서 만나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나에게 딱히 나쁘게 한 일은 없어서, 연락이 오면 그냥 만났다. 거절할 수 있는 이유가 없었으니까.
만난 지 2년이 다 돼 갈 무렵, 영희 언니가 회사 사람들을 소개해 주고 싶다며 나를 회사 근처로 불러냈다. 영희 언니, 언니의 회사 사람 두 명과 함께 공원에서 도시락을 먹었다. 술집을 경영했다는 남자 한 명과 간호사를 했다는 언니 한 명. 그들은 지금 회사를 알게 되고 정말 좋은 회사라는 확신을 받아 하던 일을 접고 회사에 들어왔다고 했다. 밥을 먹고 산책을 하는 내내 영희 언니를 비롯한 세 명은 꿈에 젖은 표정으로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가 너무 좋다며 우리는 지금 너무나도 행복한 꿈을 그리고 있다고 얘기했다.
“수지야, 너도 우리랑 같이 하지 않을래?”
“수지 씨, 깊이 생각할 게 뭐 있어? 함께해요.”
세 명의 사람이 똑같은 표정으로 웃었다.
몇 주 뒤, 지하철역 입구에서 영희 언니를 기다렸다. 한여름 대낮의 거리는 한산했다. 간간이 사람들이 지나갔다. 언니는 언제나 늦었다. 처음 만났던 날에도 늦어 나는 표를 제공하는 입장임에도 한참을 기다리다 저녁을 먹지도 못 한 채 연극을 보고서는 그냥 헤어졌었다.
“수지야, 잘 왔어. 우리 커피라도 마실까?”
대낮의 커피숍 안은 텅텅 비어 있었다. 커피숍으로 오는 길에는 학교도 있고 주택도 있고 아파트도 있었는데, 왜 이렇게 텅텅 비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오늘은 내가 살게.”
“월급 받으셨어요?”
“아니, 왜?”
“아니, 갑자기, 언니가 사신다고 하니까.”
언니가 웃었다. 언니가 시켜 준 아이스 음료는 너무 차가웠다.
“언니 일하는 회사 같이 가 보자. 알바 자리 하나 났거든. 너 알바 구한다며.”
“저 방학 때는 서울에 안 있을 거라서. 집에 내려가려고요.”
“왜?”
“굳이 여기 있을 이유가 없는 것 같아서요.”
“내려가기 전에 한 번 해 봐. 돈도 벌고, 좋잖아. 응?”
“언니, 혹시 이거 다단계 아니에요?”
“아니? 아닌데.”
“왠지 느낌이 그래서. 아니면 됐어요.”
언니를 따라 들어간 베이지색의 낡은 2층 건물 안에는 많은 사람들이 어지러이 서 있었다. 필름 상태가 좋지 않은 흑백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았다. 오래돼 보이는 실내, 뿌연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칙칙한 햇빛, 자기 갈 길을 모르는 듯한, 동공이 흐릿한 사람들.
“자자, 주목하세요. 여기 자기소개서 있는 거 가져가서 간단하게들 쓰시고요. 잠시 뒤에 강연 시작하니까, 다들 강의실로 들어가세요.”
안경 낀 남자가 박수를 몇 번 치고서는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사람들의 시선은 한순간에 안경 낀 남자에게로 쏠렸다. 남자는 고가 브랜드의 옷을 입고 있었지만 싸구려 옷에 로고만 박아 놓은 느낌이 났다.
강의는 지루했다. 들어오는 사람마다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 자랑이었다. 이해가 되지 않는 점도 많았다. 꿈을 꾸라고 말하면서 돈을 버는 것에 집중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돈 얘기였다.
“제가 교대 나와서 교사 하다가 왜 관뒀는지 아세요? 이 사업의 미래를 봤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지금은 교사 연봉보다 더 많은 돈을 벌죠. 저처럼 되고 싶지 않으세요? 얼마 전부터는 저희 남편도 같이 일하고 있어요. 남편도 교사였는데, 제가 설득했죠. 왜 그랬겠어요?”
“제가 명문대 나와서 대기업 다니다가 왜 관두고 이걸 하고 있겠어요? 대기업보다 이게 더 좋으니까 그런 거예요. 저 지금 삼십대 초반에 BMW 끌고 다닙니다. BMW 다들 아시죠? 남자라면 다들 이 정도는 꿈꾸잖아요. 대기업 다녀 봤자 BMW 못 몰아요. 야근에 시달려 봤자 겨우 돈 몇 백 받는 게 다예요.”
그들의 꿈은 돈이었으며, 이 회사는 그들에게 돈을 벌게 해 줄 수 있는 곳이었다. 그들이 설명해 준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아주 간단했다. 내 밑으로 사람들을 차곡차곡 쌓으면 됐다. 그럼 내가 여기에 발을 디디면 영희 언니가 돈을 벌겠구나. 그리고 영희 언니는 영희 언니 위에 있는 사람의 주머니에 돈을 넣어 주겠지.
두 사람의 강연이 끝나고 쉬는 시간이 되자 몇 명이 소리를 지르며 나갔다.
“네가 친구냐?”
“이러려고 나 데리고 왔어?”
다시 강연이 시작되었다. 내용은 비슷했다. 강연이 끝나자 또 몇 명이 소리를 지르며 나갔다. 한 명은 뺨을 맞기도 했다.
“수지야, 어땠어? 감동적이지. 너도 저렇게 되고 싶지 않아?”
영희 언니는 소리를 지르고 욕을 하며 나간 사람들을 보고서도 평온한 미소를 띠고서 내게 물었다. 돈 때문에 아는 사람들을 팔아먹는 직업을 꿈꿔야 하는 이유는 뭘까.
“언니, 이거 다단계 맞는 것 같은데요? 그리고 전에 저한테 의류 회사 다닌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거기보다 여기가 더 좋아서 얼마 전에 옮긴 거야. 이거 다단계 아니야. 네트워크 마케팅이라고, 요즘 새로 나온 비즈니스 모델인데, 다단계라니. 너 내가 너한테 그런 거 시킬 사람으로 보여?”
언니의 말이 모두 거짓말처럼 들렸다. 그러나 사람을 함부로 의심하면 안 된다. 사람을 의심하기 시작하면 세상에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없다. 사랑도, 우정도, 진실도, 거짓말도, 그 어느 것도 믿을 수 없다. 나는 내가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처럼 남들도 거짓말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언니가 내게 거짓말을 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그건 뭘까. 설마 돈 때문에 나한테 이런 거짓말을 한다는 말일까? 겨우 돈 때문에 나를 만나고 2년 동안이나 돈줄로서 관리하고 여기까지 불러서 거짓말까지 한다는 말일까? 그렇다면 언니는 너무나도 무서운 사람이고 내가 견딜 수 없는 사람이었다. 나는 언니의 말을 믿기로 했다.
“지금부터는 우리 같이 있어야 하니까, 일단 네 짐부터 여기로 옮기자. 어차피 조만간 방 뺀다며?”
“네, 짐은 대충 꾸려 놓긴 했는데.”
회사에는 사람이 많았지만 내가 짐을 들고 오는 걸 도와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학교 앞 고시원에서 회사 근처 숙소까지 환승을 세 번이나 하면서 낑낑거리며 짐을 옮겼다.
회사 사람 몇몇이 함께 살고 있다는 방은 시장 근처 주택가의 반지하방이었는데, 곰팡이 냄새가 약간 나는 음침한 느낌의 방이었다. 구석에는 가방과 상자 따위가 쌓여 있었고, 반쯤 열린 창문 사이로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이 보였다.
출근이라고 해야 할까. 정식으로 회사에 간 첫날부터 나는 영희 언니와 함께 사무실로 불려갔다. 부장인지 과장인지 하는 남자가 계약서를 들고 와 설명을 하며 사인을 하라고 했다.
“수지야, 같이 한 번 해 보자. 응?”
“사업 설명은 어제 자세히 들었죠?”
“네, 근데 이거 아무래도 다단계 같은데요.”
남자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다단계라뇨, 우리 그런 불법적인 단체 아니에요. 엄연히 법적으로 등록도 다 돼 있는 회사라고요.”
내 옆에서 함께 설명을 듣던 예쁘장한 여자는 다단계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는 나를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보다가 남자의 말을 듣더니 자기는 사인을 하겠다고 했다.
“저 요즘 학자금 대출 때문에 너무 힘든데, 휴학하고 이거 몇 달만 하면 4년 학비 벌 수 있다고 그래서, 맞죠?”
저런 말을 진심으로 믿는 머리로 학자금 대출을 받아 학교를 다녀 봤자 뭘 하냐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타인을 마음 편히 바보로 여길 수 있을만큼 잘난 인간이 아니었다. 나도 학교를 계속 다녀 봤자 뭘 할 수 있을지 몰랐다.
예쁘장한 여자가 들뜬 표정으로 사인을 했다.
“수지 씨도 그냥 여기 사인만 하시면 돼요. 뭐가 그렇게 어려워요.”
“저는, 아무래도 안 되겠어요.”
“수지야, 너 왜 그래?”
남자의 미간이 또 찌푸려졌다.
“영희 씨, 좀 가만히 있어 봐요.”
언니가 허리를 바로 펴며 억지로 웃어 보였다.
“수지 씨, 우리 그럼 이렇게 할까요? 원래 교육 받고 여기 있고 하려면 기본금을 내야 해요. 물론 그건 우리가 대출해 주는 거예요. 수지 씨는 지금 뭐 대출 받을 만한 담보나 그런 게 없으니까 계약서에 사인만 하면 회사에서 그런 건 알아서 다 해 줘요. 복잡할 거 하나도 없어. 근데 수지 씨는 특별히 대출 없이 그냥 일주일만 있어 보는 걸로 할게요. 그러고 나서 결정하면 어때요?”
기본금이라, 그러고 보니 아까 그 예쁘장한 여자가 옆 테이블에서 대출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었다.
“수지야, 이거 진짜 완전 좋은 기회야. 원래 다 교육비 내고 하는 건데, 너한테는 공짜로 해 주신다잖아.”
“근데 이거 제가 나중에 갚아야 하는 거 아니에요?”
“수지 씨, 걱정하지 마요. 안 받을게요. 일단 있어 봐요.”
일단 있기로 했다. 첫날 저녁으로는 아귀찜을 먹었다. 여기 오기 전에 만났던 언니의 동료들과 언니가 사 주었다. 그들은 밥을 먹는 내내 그들의 꿈에 대해 이야기했다.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더 많은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고, 모두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아귀찜을 먹고 나오며 편의점에 들러 음료를 하나씩 샀다. 근처 공원에 앉아 음료를 마셨다. 얘기는 되풀이되었다. 공원에는 비둘기가 많았다. 비둘기들은 날개가 있는데도 멀리 날아가지 않고 나무 그늘 아래를 걷기만 했다. 가끔 날아오르기도 했지만 잠깐이었다. 날지 않는 비둘기들은 정체 모를 회색빛 덩어리처럼 보였다. 나는 길을 걷다 문득 비둘기가 되는 꿈을 꾸고는 했다.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거나 저 멀리까지 펼쳐진 바다를 볼 때면 눈앞이 아련해지며 깃털이 돋아나 비둘기가 되는 꿈을 꾸었다.
이튿날, 아침부터 준비하고 회사로 가야 했다. 영희 언니가 옆에서 늦었다며 재촉을 해 급히 옷을 갈아입으려 하는데 갑자기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나는 전화를 받기 위해 집 밖으로 나가려 했다.
“수지야, 어디 가니?”
“전화가 와서, 잠시만요.”
“수지야, 같이 가자.”
내가 전화를 받는데 언니가 왜 같이 간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은 딱 하나였다. 이게 다단계라는 걸 인정하는 것. 강연 내용, 사무실 분위기, 이런 단체 생활 등 인터넷 매체 등에서 접한 다단계와 모든 게 같았다. 그러나 언니가 정말 그런 사람일까. 나한테 여태껏 딱히 잘해 준 건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돈 때문에 나를 만났고 이제는 전화 받는 데 쫓아오기까지 하는 그런 사람일까.
언니의 눈치를 보며 통화를 짧게 끝냈다.
“근데 왜 전화 받는 데까지 따라오세요?”
“아, 우리는 단체 업무라서, 다른 사람들하고 단체 활동을 해야 하거든.”
회사에서 언니는 내가 화장실에 갈 때도 따라왔다. 나는 다른 사람이 있으면 긴장해서 소변이 나오지 않는다고 말했는데도 언니는 나가지 않았다.
“그럼 너 볼일 보는 동안 계속 손 씻고 있을게.”
두 번째 저녁은 왕돈가스였다. 고기가 질겼지만 김치 옆에 놓인 통조림 파인애플은 달고 달았다.
사흘째 아침은 컵라면이었다.
“수지야, 우리가 돈이 그렇게 많지가 않거든. 우리는 이제 시작하는 단계라서. 그래서 아껴야 해. 꿈을 위한 거니까, 우리끼리 컵라면만 먹어도 맛있어. 그렇지?”
며칠 지내면서 이야기를 나눠 본 회사 사람들 중 오갈 데가 없어서 여기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들의 말대로라면 모두 화목한 가정에서 자라났으며 고향에 집이 있고 부모가 있고 형제가 있는 사람들이었다. 통장에 돈도 어느 정도 있었다. 단지 BMW를 아무렇지 않게 살 만한 큰돈이 없는 것뿐.
“그런데 이거, 다른 사람을 이용해서 돈 버는 거 아니에요?”
“수지야, 내가 며칠 가만히 있었는데 너 첫날부터 지금까지 진짜 말 이상하게 한다. 이용이 아니라 같이 성장해 가는 거지. 꿈을 위해서.”
한 명이 성장하려면 다른 한 명의 피를 빨아야만 하는 게 동반 성장이라는 말은 태어나서 처음 들었다. 여기가 이상한 게 아니라면 세상이라는 게 원래 이런 곳일까.
부장인지 과장인지 하는 남자는 일주일의 여유를 준다고 하고서는 날 볼 때마다 계약서 언제 쓸 거냐고 독촉을 해 댔다.
“대출이랑 뭐 이런저런 것들에 동의하는 계약서인데, 내가 계속 설명했잖아요. 수지 씨, 뭐가 그렇게 문제예요?”
“저는 남의 돈 빌려서 뭘 하고 싶은 생각이 없어요.”
“아, 수지 씨 그렇게 안 봤는데 참 답답한 사람이네. 남의 돈은 무슨 남의 돈이에요, 성공해서 갚으면 되는데. 남의 돈이 다 내 돈 되고 그런 거예요.”
“수지야, 너 부모님한테 효도하고 싶고 그렇지 않아? 돈 벌어서 외제차도 사 드리고, 너 하고 싶은 것도 하고.”
외제차 사 드리는 게 효도라는 말도 23년 살면서 처음 들어봤다. 남을 이용해서 번 돈으로 외제차 사 드리고 효도했다며 좋아하는 자식이나, 그걸 받고 좋아하는 부모나 모두 멀쩡한 인간은 아닐 것 같았다.
“더 생각해 볼게요.”
남자가 또 미간을 찌푸렸다.
저녁에도 컵라면을 먹었다.
“수지야, 너 이것도 하나 먹을래?”
언니가 웃으면서 고구마 만쥬를 하나 건넸다.
“우리끼리 있을 때는 원래 이런 거 안 먹는데, 전에 보니까 네가 이거 좋아하는 것 같아서 특별히 사 주는 거야.”
“잘 먹을게요.”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했다. 남이 자신의 돈을 털어 사 주는 거니까. 어떤 목적이 있든 없든.
여기 와서 나는 하는 것도 없이 얻어먹기만 하고 있었다. 아침이면 사무실에 갔다가 낮에는 언니, 언니의 동료들과 골목을 헤맸다. 우리는 그냥 얘기를 하고, 또 얘기를 했다. 나라는 인간이 누군가와 그저 얘기를 하는 것이 컵라면을 얻어먹을 정도의 가치가 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보통의 경우라면 1시간 동안 힘들게 일해도 겨우 몇 천 원을 손에 쥘 뿐인데, 가만히 얘기를 듣고 있는 건 어느 정도의 가치가 있는 것일까.
“수지 씨, 난 수지 씨 처음 봤을 때부터 참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왜 우리랑 같이 안 하려고 해요?”
“그래, 수지야. 다들 너 괜찮게 보고 있는데.”
고마워해야 하는 걸까. 아마도 그렇겠지. 잘 알지도 못 하는 나라는 사람을 괜찮게 봐 준다는 걸.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먹고 돌아가는 길에 언니가 만화책을 보고 싶다고 했다. 숙소를 함께 쓰는 사람들끼리 우르르 만화 대여점에 갔다. 언니는 만화책을 쭉 둘러봤다.
“이거 신간 나왔네.”
언니는 가만히 서서 책을 촤르륵 넘겼다.
‘대여료 300원’
입구에 붙어 있는 큰 종이에 대여 금액이 나와 있었다.
“그냥 다음에 볼래.”
“안녕히 계세요.”
대여점 아저씨는 말이 없었다. 우리는 빈손으로 컴컴한 어둠 속에서 가로등 불빛을 따라 숙소로 돌아왔다.
뒤척거렸다. 잠이 오지 않아 뒤척거렸다.
“수지야, 안 자?”
영희 언니의 동료인 지혜 언니가 속삭였다. 지혜 언니는 회사에 와 보기 전에 영희 언니가 소개해 준 사람이었지만 여기 온 뒤 따로 얘기할 틈이 있었던 건 아니었기에 모여서 밥을 먹을 때 잠깐 얼굴이나 볼 뿐, 어색한 사이였다.
“우리 잠깐 산책이나 할까?”
나는 지혜 언니와 둘이서 밖으로 나왔다. 별도 없는 흐린 하늘은 컴컴하기만 했고 주택들 사이로 이어진 골목길에는 아무도 없었다.
“너 담배 피워?”
지혜 언니가 담배 피우는 건 처음 보았다.
“아뇨.”
내 대답을 들은 언니는 내게서 약간 떨어져 쪼그리고 앉아 얼마간 담배를 피우고, 길바닥에 비벼 불을 끈 후 어느 집 앞 쓰레기봉투에 넣었다.
“넌 왜 이거 안 하려고 해?”
“하기 싫어서요.”
“돈 벌기 싫어?”
“돈은 벌고 싶은데, 이런 식으로는 싫어요.”
“다단계 같아서?”
언니가 웃었다.
“네.”
“나도 처음엔 그런 줄 알았는데, 해 보니까 아니야.”
“해 보니까 어떠신데요?”
“내가 직접 해 보니까 듣기만 했던 거랑은 달라. 내가 직접 물건을 사서 판매도 하고, 그냥 내 사업 하는 느낌이랄까? 되게 괜찮아.”
그러고 보니 방구석에 있던 상자에 치약, 음료 따위의 이미지가 찍혀 있었던 것 같았다.
“뭐해?”
순간 닭살이 확 올라왔다. 영희 언니였다.
“자다 보니까 없어서 나왔어.”
지혜 언니도 영희 언니가 데리고 왔다고 했던 기억이 났다.
‘영희에게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요. 지혜도 나도 영희가 소개해 줘서 여기 알게 됐거든요.’
술집 사장이었다는 남자가 웃으며 말했었다.
“그냥, 잠이 안 와서 수지랑 얘기 좀 하고 있었어.”
“아, 그래, 무슨 얘기?”
“그냥 이런저런, 인생 얘기. 아, 이제 졸리다.”
지혜 언니가 웃었다. 영희 언니도 웃었다. 어둠 속에서 어느 한 쪽의 웃음이 참 씁쓸한 느낌이 들었는데, 그게 어느 쪽인지는 알 수 없었다.
나흘째 아침에는 셋 다 늦잠을 잤다. 사무실에 들러서 인사를 하고 편의점에 가려는데 부장인지 과장인지 모를 남자가 말을 걸었다.
“수지 씨, 그리고 오늘은 사장님하고 저녁에 식사 같이 하기로 해 놨는데, 괜찮죠?”
“어머, 사장님요?”
영희 언니가 손을 맞잡으며 호들갑을 떨었다.
“수지야, 너 사장님 얘기 못 들어봤지. 엄청 멋진 분이야.”
사장님과의 저녁식사는 시장 변두리에 있는 허름한 호프집에서 이뤄졌다. 언니의 말에 따르면 사장님은 심심하면 해외여행을 다니고 돈이 너무 많아 매일 쓰기만 한다는데 그런 분이 왜 이런 데서 저녁을 드시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수지 씨, 얘기 많이 들었어요. 전부터 영희가 수지 씨 얘기 많이 하더라고. 착하고 꿈 많은 사람이라고.”
“아, 언니가 그러던가요?”
언니는 활짝 웃는 표정으로 사장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왜 우리 사업을 안 하려고 해? 그렇게 꿈 많은 사람이.”
“네?”
“수지 씨 꿈을 이룰 수 있는 좋은 기횐데 왜 안 하려고 하냐고.”
“저는 돈 많이 버는 게 꿈이 아닌데요.”
“돈?”
“여기서 다들 돈 얘기밖에 안 하시던데.”
사장님이 땅콩 한 알을 씹었다.
“돈이 중요한 게 아니야. 우리가 말하는 건 꿈이에요.”
“여기서 말하는 꿈은 돈인 것 같던데요.”
“수지 씨 참 말귀를 못 알아듣는구나.”
말귀를 못 알아듣는다. 이런 말을 들은 후에는 늘 얻어맞거나 욕을 들었던 기억이 났다. 지금 박차고 나가야 할까. 그럼 언니는 어떻게 될까. 다른 사람까지 망쳐 버릴 수는 없었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마음이 아파지려고 할 때는 몸을 극도로 아프게 해야 마음이 보호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손톱으로 팔뚝을 꾹 누르며 긁었다.
“내가 어떻게 사는지 알아? 낮에는 갤러리에서 전시 보고, 그림도 사고, 인디 밴드들하고 문화적으로 소통도 하고, 친분도 맺고. 심심하면 해외여행도 다니고 그러면서 여유롭게 살아. 수지 씨 지금 어때?”
나는 도록을 산 적은 있지만 그림을 산 적은 없고 밴드 공연을 보러 간 적은 있지만 밴드와 친분은 없고 가이드북 보는 걸 좋아하지만 해외여행을 한 적은 없다.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돈은 별로 없지만.”
“수지 씨 참 재미있는 사람이네. 돈이 없는데 어떻게 나쁘지 않을 수가 있어? 바보야?”
사장님이 맥주를 들이켰다. 국산 맥주, 500cc.
“수지 씨 할 줄 아는 게 뭐 있어? 지금까지 해 본 건?”
“지금 대학 다니고 있고요. 이런저런 알바는 많이 해 봤어요.”
“지금 대학생이면 요즘 취업하기가 얼마나 힘든 줄 알겠네. 스펙 좋고 집안 빵빵한 애들이나 좋은 데 취업하는 게 요즘 세상이야.”
나는 좋은 스펙이나 백을 가져 본 적이 없었다.
“뭐라도 하고 살겠죠.”
나는 내가 뭘 해야 할지, 뭘 할 수 있을지 몰랐다. 그렇지만 눈앞에 있는 사장님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런 생각으로 뭘 할 수 있는데? 수지 씨가 솔직히 예쁜 얼굴은 아니잖아? 몸매도 그저 그렇고. 대학도 인서울이긴 해도 손꼽히는 명문대는 아니잖아?”
팔에서 피가 조금씩 나기 시작했다. 언니는 맥주를 들이켜며 웃고 있었다. 충고랍시고 비난을 내뱉던 사람들이 생각났다. 그 사람들은 하나같이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이라고 말했다. 자기들이 말하는 대로 해야 한다고 했다. 얼굴을 고치거나 남들이 하는 일을 따라 하거나 재밌지 않아도 억지로 웃거나 단순히 자기 지시에 따르거나 하는 따위의 일들을 주문하며 그대로 따라야만 내가 다른 사람들처럼 잘살 수 있다고 했다.
“요즘 얼굴 후지면 서류에서 떨어지고 몸매 후지면 면접에서 떨어지는 거 몰라?”
사장님은 선글라스를 쓰고 있어 눈이 보이지 않았다. 어떤 눈빛을 하고 있는지 보고 싶었다. 어떤 눈빛을 지니고 있어야 저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을 수 있는 건지 알고 싶었다.
“너 같은 애들이 졸업해 봤자 뭘 할 수 있을 것 같아?”
춥고 가슴이 시렸다. 반박하고 싶었지만 내가 뭘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라면 다시 할 수 있을까. 요즘은 그것도 경쟁률이 높았다.
“창녀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어.”
사장님이 맥주를 바닥까지 쭉 들이켰다.
“수지 씨 같은 사람은 우리 일 안 하면, 창녀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피가 흘러내렸다. 흘러넘쳤다. 다른 사람 주머니를 털어서 내 주머니를 채우느니 내 몸을 팔아 돈을 버는 게 낫겠다는 말은 할 수 없었다. 그나저나 사장님 말대로라면 난 예쁘지도 않고 날씬하지도 않은데, 내 몸을 사려는 사람이 있기나 할까. 사장님이 날 너무 과대평가하고 있는 건지도.
“수지야, 사장님 말 잘 들었지? 내일 계약서 쓰자.”
언니가 웃으면서 내 등을 두드렸다.
“건배!”
언니가 내 잔에 자기 잔을 부딪치며 웃었다.
다섯째 날 아침에도 컵라면을 먹었다.
“해장도 되고 좋네.”
영희 언니가 웃었다.
“어제 사장님하고 얘기 잘했어? 그 분 멋있지.”
지혜 언니가 컵라면을 국물까지 다 먹고서는 웃으면서 말했다. 간호사를 하다가 이 일을 안 후 외국에 가는 꿈을 꾸게 됐다는 지혜 언니는 열심히 돈을 벌어 외국에 가서 살 거라고 했다. 간호사였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지혜 언니는 언제나 상냥했고 잘 웃었다.
“수지 씨, 계약서 안 쓸 거예요?”
“일주일만 있어 보라고 하셨잖아요. 아직 일주일 안 됐어요.”
계약서 쓰라고 강요하는 것 말고는 하는 일이 없어 보이는 남자의 미간이 또 찌푸려졌다. 영희 언니도 따라 인상을 썼다.
“같이 들어온 사람들은 벌써 교육 다 받고 사업 시작했는데 수지 씨 혼자 이렇게 뒤처져 있어서야 되겠어요?”
나는 여기서도 뒤처져 있는 모양이었다.
“영희 씨가 신경 좀 써.”
누군가 내 앞에서 저렇게 말하면, 내가 신경쓰임을 당해 줘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설을 하든 배려를 하든 나를 신경써 주는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으려면 나는 그 사람의 뜻대로 움직이는 착한 아이여야 했다.
“그리고 영희 씨, 이거 챙겨 가.”
남자가 ‘건강 음료’라고 전면에 크게 써 있는 상자를 영희 언니에게 내밀었다. 언니는 상자를 받기 전 종이에 사인을 하고, 상자를 뜯어 내게 음료가 담긴 팩을 하나 내밀었다.
“마셔 봐, 맛있어. 몸에도 좋대.”
저녁에는 회사 근처 분식집에서 떡볶이를 먹었다.
“여기 떡볶이 맛있지. 가끔 와서 먹는데 너무 맛있어.”
“아, 네, 맛있네요.”
빨간 밀가루 떡볶이에서는 조미료 맛이 잔뜩 났지만 언니의 웃는 얼굴을 보면서 맛없다는 말은 할 수가 없었다.
“내가 너한테 밥 사 주고 이런 거 다 내 주머니에서 나가는 거야. 벌써 며칠이나 됐어. 공짜라고 생각하면 안 돼. 알지?”
나는 언제나 사람들을 믿으려고 했는데, 사람들은 자꾸 내가 그들을 믿을 수 없게 되는 어두운 방으로 끌고 갔다. 눈을 가리고 입을 막고 거짓말만을 들려주었다. 가끔 진실을 이야기하면 그게 더 거짓말 같았다.
‘언니, 여태껏 언니가 저한테 얻어먹은 밥값이랑 저희 부모님이 드렸던 여비로 컵라면을 백 개는 넘게 살 수 있어요.’라고 나는 생각했다. 물론 말은 하지 못 했다. 이런 말을 하는 건 예의가 아니니까.
숙소 앞에 도착하니 지혜 언니가 숙소 옆 골목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왜 이제 와?”
“아, 떡볶이 먹고 오느라고.”
“저번에 갔던 거기? 맛있었겠다.”
“언니는 저녁 뭐 드셨어요?”
“나? 난 왕뚜껑.”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닌 것 같아. 모두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걸 받아들이지 않으면 내가 미쳐 버릴 거야. 거짓말이 아니라고 해도, 이건 싫어.
“언니, 저 안 할래요.”
영희 언니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어졌다. 지혜 언니는 약간 씁쓸한, 그러나 착해 보이는 미소를 지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닌 것 같아요. 그냥 집에 갈래요.”
“수지야, 너 여기서 관두면 평생 아무것도 못 해. 네가 다른 데 가서 다른 일은 할 수 있을 것 같아?”
“다른 일 못 해도 괜찮아요. 이건 아니에요.”
“야! 내가 너한테 어떻게 해 줬는데!”
영희 언니가 2년 만에 처음으로 소리를 질렀다. 처음으로 날 죽일 듯이 째려보았다.
“지혜야, 얘 간댄다.”
지혜 언니는 대답하지 않았다. 움직이지도 않았다. 나는 방으로 들어가 황급히 짐을 챙겨 나왔다. 영희 언니가 날 때릴 것만 같았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언니는 그저 마지막까지 날 째려보기만 했다. 지혜 언니는 그 뒤에서 슬픈 표정을 지으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나는 뛰었다. 크고 무거운 가방을 양손에 들고 지하철역까지 혼자 뛰었다. 뒤따라오는 사람이 없나 가끔 뒤를 돌아보았지만 아무도 따라오지 않았다. 털썩, 바닥으로 가방이 떨어졌다. 긴장한 탓에 손의 힘이 풀린 걸까. 뒤돌아보니 회색 깃털이 바람에 실려 날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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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쓰려고 놔뒀었는데 더 쓰지 않았던... 한 십 년 전에 쓴 것 같은 글.



그 여자, 고양이를 좋아하는 것 같다.
담배를 피우러 옥상에 나갔다가 그 여자가 쪼그리고 앉아 고양이를 쓰다듬고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누렇고 뚱뚱한 고양이였다.
나랑 비슷하다. 누렇고 뚱뚱한.
내 피부가 누런 건 황인종인데다 선크림을 안 바르기 때문이고 내 이가 누런 건 골초이기 때문이고 내 배가 나온 건 밤마다 라면을 먹고 자기 때문이다.
그 고양이가 누런 것도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던 것일 테고, 뚱뚱한 건, 글쎄. 그 여자가 뭔가 먹을 걸 주는 모습은 아직 본 적이 없어 녀석이 뭘 먹는지 모르겠다. 고양이가 뭘 먹고 사는지 난 잘 모른다. 설마 쥐를 먹지는 않겠지.
누뚱이(편의상 내가 붙인 이름이다. 발음에 주의하지 않으면 늦둥이처럼 들린다.)는 평소에는 집에 들어가 잠만 자는지 꼬리도 보이지 않는다. 옥상 구석에는 녀석의 집과 밥그릇이 덩그러니 놓여 있고 가끔 그녀의 빨래가 바람에 가벼이 나부낄 때면 꽤 괜찮은 풍경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녀의 옥상과 나의 옥상은 꽤나 가까워 옥상에 그녀가 있으면 난 언제나 다른 곳을 보며 담배를 피운다. 그녀도 아마 담배 피우는 남자를 싫어하겠지. 싫어하진 않더라도 어쨌거나 좋아하는 여자는 별로 없으니까. 그렇지만 그녀와 내가 가까워질 확률은 잘 모르겠고 내가 담배와 멀어질 확률은 아주 낮으므로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가끔 누뚱이 혼자서 옥상을 어슬렁거리고 있을 때는 누뚱이를 바라보며 담배를 피우기도 하는데 연기가 바람을 타고 그쪽으로 넘어갈 때면 녀석은 흠칫 놀라곤 한다. 처음에는 내가 문을 열고 나타나기만 해도 눈을 동그랗게 뜨며 집으로 뛰어들어가던 녀석이었는데, 이제 익숙해졌는지 별로 신경도 안 쓰는 듯하다. 아니면 내가 자기와 비슷한 부류라는 걸 알아차렸는지도 모르지.
햇살 좋은 봄날에 하릴없이 옥상에서 어슬렁거리는 누렇고 뚱뚱한 존재.
이렇게나 비슷한데 왜 녀석은 귀여움을 받고 나는 아닌 것일까. 기이한 일이다.

옥상에 널어 뒀던 빨래에 또 담배 냄새가 배 있다.
옆집 남자 때문인 것 같다. 내가 옥상에 올라가면 나름 구석에 가서 피우긴 하던데, 내가 안 보이면 그냥 돌아다니면서 피우겠지.
사람이 넘어올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를 담배 연기가 못 넘어올 리 없다. 혹시 우리 집 옥상에서 피우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누렁이의 털이 갈수록 더 누래지는 게 그 사람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하루이틀도 아니고 탈취제를 뿌리는 것도 귀찮다. 누가 웬 담배 냄새냐고 하면 남자친구가 담배 피우면서 빨래를 널어서 그렇다고 말해야지. 사람들은 의외로 '이걸 믿어?' 싶은 것들을 믿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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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에 쓴 글.



모닝콜 소리에 눈을 떴다. 반쯤 들어오다 마는 햇살에 눈이 따갑다. 기지개를 켜며 꿈지럭거리다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의 두꺼운 책등에 머리를 찧었다.

"기도합시다."
기도손을 하고 눈을 감았다. 눈을 감으니 다른 감각들이 곤두선다. 좋은 향기가 난다. 2의 긴 머리를 휘감고 있는 체리 향 샴푸 냄새.
교회 뒤에 자리한 널찍한 마당에 다 같이 모여 국수를 먹으며 크리스마스 트리를 어떻게 꾸밀 것인가에 대해 논의했다. 크리스마스가 며칠 남지 않았다. 내 생일도 못 챙기는 주제에 남의 생일을 챙길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어쨌거나.
국수를 다 먹고 그릇을 갖다 놓으러 갔는데 집사인지 장로인지 하는 아저씨가 십일조는 언제부터 낼 거냐고 묻는다.
"얘는 아직 제가 전도 중이에요."
2가 집사인지 장로인지 하는 아저씨를 향해 웃어 보이며 보이지 않게 내 등을 떠민다. 엉거주춤 움직이는 내게 2가 귓속말로 천천히 내도 된다고 속삭였다.
"천국 가면 다 돌려받는 거긴 한데, 너는 아직 안 내도 돼."
"으응, 그렇구나."
"1아, 나는 네가, 정말, 음, 정말 구원 받아서 나랑 같이 천국 갔음 좋겠어."
"아, 그래, 정말, 고마워."
'지금 당장 같이 가자고 해도 갈 수 있니?'라고, 혼자 생각만, 했다.
"십일조는 네가 정말 내고 싶을 때, 그때 내면 돼."

일요일 아르바이트까지 빼고 교회에 나가게 된 건 2의 전도 때문이었다. 아니, 전도한 2 때문이었다.
셔터를 내린 가게 안에서 나는 걸레질을 하고 2는 돈을 세고 있었다. 잘 지워지지 않는 자국이 있어 박박 걸레질을 하다 팔이 아파 눈을 감으니 체리 향 샴푸 냄새가 났다.
"너 내일 뭐해?"
종소리에 침을 질질 흘리는 파블로프의 개처럼, 2의 목소리만으로 손끝이 저려 왔다.
"내일 출근해야지."
2가 머리를 뒤로 젖히며 까르르 웃었다.
"내일부터 여름휴가잖아. 5일 동안."
나는 잠깐 멍하니 서서 이달의 날짜들을 계산했다.
"딱히 할 거 없겠네, 그럼. 너 나랑 우리 교회 갈래?"
"교회?"
난 교회도 성당도 하나님도 하느님도 좋아하지 않는다고, 그의 아들과 며느리도 좋아하지 않는다고 덧붙이고 싶었으나 2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았기에 입을 다물었다.
나는 2의 근처로 발걸음을 옮겨 더럽지도 않은 카운터 위를 닦았다. 그녀의 포니테일에서 나는 냄새에 걸레를 쥔 손이 간질거렸다. 2의 머리카락을 만지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지만, 용서받기 힘든 충동만 느끼며 살아온 나는 저지르기보다 억누르는 데 익숙한 인간이다. 살짝 통통한 손가락으로 터치 스크린을 꾹꾹 누르며 정산을 마무리하는 2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2가 고개를 돌릴 기미가 보이자마자 다시 걸레질에 집중했다.
"1아, 나는 네가 구원 받았으면 좋겠어. 그래서 나랑 같이 천국 갔음 좋겠어."
"천국?"
그딴 게 있다고 믿는 인간들의 머릿속이 궁금하다는 말이 목구멍을 찔러 댔지만, 침을 꿀꺽 삼키며 그 말도 함께 넘겨 버렸다.
"학교에서도 여기에서도, 그냥 널 볼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들었어."
"학교에서 날 봤다고?"
"늘 같은 시간에 같은 일을 하고 있으니까. 전공실 갈 때마다 자판기 청소하고 있고, 책 빌리러 갈 때마다 책 정리하고 있으니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렇게 여기 서 있을 수 없으니까.
"그랬구나, 아는 척하지 그랬어."
"바빠 보여서. 널 볼 때마다 바빠 보이고, 지쳐 보여서. 그리고 나랑 아르바이트도 같이 하는데 늘 바쁘니까, 일 끝나고 같이 커피라도 마시자거나 하기도 그렇고."
돼지국밥보다 비싼 커피 같은 건, 사 마실 돈도 없어.
"아, 요즘 좀 바쁘긴 했어."
"아무튼, 그래서. 뭐랄까, 마음이 평화로워질 수 있는 곳을 알려 주고 싶어서, 그래서."
"어, 근데 나는 종교 같은 거 안 믿는데."
2의 눈망울이 흔들거리며 침을 꼴깍 삼키는 게 보였다.
"사실, 며칠 전에 네가 학생식당 구석에서 울면서 밥 먹는 걸 봤거든."
망할.
울면서 밥을 먹었던 건, 순전히 돈 때문이었다.
백반이 지긋지긋해서 뚝배기 불고기 정식을 먹고 싶었는데, 딱 100원이 모자랐다. 어제 방세를 내 버려서 통장에도 돈이 없는데, 통장 잔고를 몇 번이고 계산했지만 카드를 긁을 수 없었다. 나는 할 수 없이 백반을 주문했는데, 하얀 주방모자를 쓴 아주머니가 '달걀후라이 소진'이라고 적힌 종이를 백반 받는 곳 앞에 붙이고 있었다.
하루 한 번 먹는 식사인데 100원이 모자라 제일 싼 메뉴를 먹어야 하고, 시간을 못 맞춰 달걀도 못 먹게 됐다는 사실에 갑자기 머리가 뜨거워지며 눈물이 왈칵 솟았다. 콧물을 훌쩍거리며 휴지를 몇 장 뽑아 식당 제일 구석으로 향했다. 조용히 콧물을 닦으며 밥을 먹었다. 한 숟가락 퍼 넣을 때마다 눈물이 한 방울씩 흘러내렸다. 콧물을 닦았던 휴지를 조심스레 접어 눈물도 닦았다.
머릿속으로 빠르게 영상이 재생되며 얼굴이 화끈거렸다. 나는 다시 고개를 숙이고 걸레질에 집중했다. 2가 계산대 서랍을 밀어넣는 소리가 들렸다.
"다음부턴 혼자 밥 먹지 말고 나랑 같이 먹자."
"어, 시간이 맞으면, 그러자."
"내일 딱히 할 거 없으면 교회도 같이 갔으면 좋겠는데."
"아, 근데 좀, 피곤해서."
"종일 있는 거 아니고 그냥 아침 예배만 같이 보고 가면 괜찮지 않을까? 난 네가 정말 구원 받아서 행복해졌음 좋겠어."
그리고 벌써 반년째, 나는 2와 함께 교회에 다니고 있다. 자신을 믿어야만 천국에 들어올 수 있게 해 준다는 치사하고 이기적인 신을 내가 믿게 될 리 없지만.
내가 믿는 건 2에게서 나는 향기, 그녀의 솜털 같은 목소리와 속삭이는 발걸음 소리 같은 것들.
"자, 옆 사람과 손을 잡고, 함께 노래 부릅시다."
언제나 나를 자기 옆에 앉히는 2의 손을 잡고 노래를 부른다. 몇 번을 불러도 가사가 외워지지 않는 노래를 열심히 부른다. 2의 손가락 사이사이를 꼼지락거리고 싶다는 충동이 일 때마다 눈을 꼭 감고 더 크게 노래를 부른다. 당연하게도, 가사를 틀린다. 내가 가사를 틀릴 때마다 2는 노래를 부르다 말고 까르르 웃는다.
교회 앞마당에 세워진 커다란 트리가 나를 내려다본다. 어두운 밤하늘로 치솟은 커다란 금색 별 하나.
"크리스마스 예배도 같이 올 거지?"
나를 올려다보는 2의 새까맣고 촉촉한 눈동자를 보면, 뭐든 그녀가 하자는 대로 맞춰 주고 싶어진다. 그렇지만 그녀가 나를 먹여살려 줄 건 아니니까.
"그날은 일해야 해. 전날에도 일해야 하고."
2는 개강 후 아르바이트를 관뒀다.
"크리스마스 즈음에는 다른 애들이 다 일하기 싫다고 해서, 사장도 일하기 싫다고 하고. 원래 사장이 아침조잖아. 그때부터 마감까지 쭉 하면 시급 더 쳐 준다고 하더라고."
"같이 열심히 준비했는데, 트리도 꾸미고 선물도 만들고."
"그래도 일해야 하니까, 어쩔 수 없어."
2는 시무룩해질 때면 오른쪽 볼에 바람을 넣는다. 잘 부푼 풍선껌 같다. 콕 찔러 터트려 버리고 싶다.
"다른 사람들이랑 재밌게 놀아. 나도 일 끝나고 시간 봐서 연락하든가 할게."
교회 앞에서 헤어진다. 2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는데 2가 고개를 돌려 손을 흔든다. 나도 손을 흔들고, 뒤돌아선다.
이틀치 일당을 평소보다 더 쳐 준다고 해도, 십일조를 낼 돈 같은 건 없다. 장학금을 받아도, 아르바이트를 해도, 보증금 없는 옥탑방에 살아도, 하루에 한끼만 먹어도 왜인지 늘 돈이 부족하다. 다시 고시원에 들어가야 하나. 고시원에 들어간다 해도 아낄 수 있는 건 전기세, 물세 정도다. 맛없는 밥과 김치만 먹는 생활을 반복하면 밥값도 아낄 수 있겠지만.

휴대전화를 켰다. 잠에 찌든 근시안은 큰 숫자밖에 읽지 못한다. 오전 8시라는 건지 오후 8시라는 건지 모르겠다. 눈을 쓱쓱 비비고 다시 화면을 들여다봤다. 오후 8시다. 오전 아르바이트 후 나도 모르게 잠들어 버렸는데, 5시간이나 자 버렸다. 또 밤새겠군, 작게 중얼거리며 기지개를 켰다. 아야, 나도 모르게 소리가 튀어나왔다. 문에 부딪힌 손등이 아팠다.
문고리를 돌려 밀고 부엌으로 향했다. 더러운 물컵들 중 하나를 골라 한 번 씻어 물을 받았다. 방으로 돌아가 조용히 물을 마시려는데 벽이 미세하게 흔들거렸다. 작게, 작게, 더 작게, 억누르는 신음과 함께 방이 움직였다. 물을 머금고 바닥에 누워 꼴꼴거리며 물을 넘겼다. 컵이 더러워서인지 물맛이 더러웠다.
부엌에 물컵을 갖다 놓고 오다 옆 방에서 나오는 남자와 마주쳤다. 몸을 돌려 비켜 줬다. 여성 전용 고시원인데, 간혹 남자들과 마주친다. 그가 목발을 짚고 쿵쿵거릴 때마다 헝클어진 머리카락이 고시원 벽과 함께 흔들렸다. 남자는 나가다 말고 총무 아저씨와 인사를 했다.
징검다리처럼 뚝뚝 떨어진 기억들 사이로 남자의 모습이 오락가락하며 필름이 되감기다 멈췄다. 오늘 새벽 6시께 편의점에서 콘돔을 사 갔던 남자다. 목발을 짚고 와서 콤돔을 두 개 사 갔다.
나머지 하나는 언제 쓸까, 문득 궁금해졌다.
고시원에 대한 기억은, 이런 것들. 과제 파일 사이에 끼어 죽어 있던 개미떼, 갈라진 타일 바닥, 더러운 녹색 물컵, 누런 찌꺼기들이 들러붙어 있던 밥-수입 쌀로 지은, 옥상에서 빨래를 널 때 가끔 마주쳤던 이름 모를 여자들, 복도와 계단에서 스쳐지나간 그녀의 남자들.
그리고 계단 옆에 놓여 있던 스펀지가 튀어나온 소파에 앉아 담배를 피웠던 기억 따위. 옥상 문틈으로 새 나오는 햇빛이 담배를 든 손가락 끝을 환하게 만들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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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을 안 본 지 오래됐는데... 안 웃기고 불편한 경우가 많아서 안 보기 시작했는데... 오늘 심심해서 이 글 저 글 보다가 공감돼서 스크랩.

까르보불닭 사러 간 슈퍼에 까르보가 없었는데 그냥 나오려니 민망해서 산 과자...... 과자도 먹고 싶기도 했고... 아무튼...
원래 좋아하는 뽀또 치즈맛이랑 못 먹어 본 이거 중에 잠깐 고민하다가 이걸로 사 왔는데 맛있네.

홈런볼 하면 예전 윈디시티 콘서트 때(아마 2006년) 김반장님이 홈런볼 많이 먹으면 얼굴이 홈런볼처럼 된다고 자기처럼 된다고 하셨던 거 생각난다. 사람들이 잘생겼어요 그러자 역시 음악이야 하시면서 음악 하면 사람이 잘생겨 보인다고 외모에 자신 없으신 분들 음악을 하세요 그러셨던...ㅎㅎ
벌써 이리도 오래 전 일이 되었다니.
그때 방학 때 내려오지 말고 서울에서 밴드 찾아서 했음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
그 당시의 내게는 돈이 제일 큰 문제였고 오래 살 거라는 생각도 없었기에 계획이라는 걸 딱히 안 세우고 살았어서 그냥 그때그때 알바 하고 학교 다니고 하고 싶은 거 좀 하고 뭐 그런 게 다였지.
큰 꿈 같은 건 가슴속에만 품어 두고 내가 무슨 하면서. 나도 잘할 수 있는데 생각해도 누가 솔직히 네가 무엇무엇을 잘하는 건 아니지 예쁜 건 아니지 등등 한마디 툭 던지면 바로 엄청나게 자괴감 느끼고 무기력해지고. 그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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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한 달 전에 일주일 가량 고생을 하고도 또 불닭이 먹고 싶어져... 이번에는 까르보로... 동네 슈퍼 세 군데 갔는데 봉지면은 없고 컵면만 두 군데 팔더라.
떡볶이는 엄마표.
까르보는 그나마 먹을 만한 매운 맛인데 속이 어떨지는 모르겠다.
요 며칠 먹고 싶은 거 다는 아니지만 막 먹는 중...

한 세 입 먹고 혓바닥 아려서 후회했다. 앞으로는 무슨 맛이든 불닭은 안 먹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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