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전화하겠다는 친구 말에 밤 9시가 넘도록 기다리다가 전자 도서관에서 책을 검색했다.
백민석 작가님으로 검색했더니 내가 읽지 않은 책 세 권과 내가 읽은 책 한 권이 나왔다.
읽지 않은 책 두 권 중 한 권은 나오자마자 사 놓고 아직도 읽지 않은(무서울 것 같아서 ㅡㅡ;) 공포의 세기이고 또 한 권은 방금 대출한 교양과 광기의 일기, 또 한 권은 멜랑콜리 해피엔딩이라는 여러 작가님들의 글 모음집.

앞부분 조금 읽고서 블로그에 끄적거리는 이유는 내가 도쿄에서 살았던 곳 근처의 우에노역 및 이리야역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2019년 7월부터 12월인가까지, 제일 가까운 역이 이리야역이었어서 매일 지나쳤었다. 가끔은 지하철을 타기도 했다. 아주 가끔... 그리고 한겨울의 한 달 가량은 새벽 알바 갈 때 지하철을 탔더랬다. 새벽 4시 40분쯤?에 집에서 나와서 알바 하러 갔었는데, 겨울이 되니 춥고 컴컴해서 무서웠기 때문이다.
어쨌든 반가워서 끄적끄적. 수백 번은 지나친 역이니까.
우에노역에도 종종 갔었다. 주로 미술관 갈 때. 히가시우에노에 몇 달 살기도 했었지만 전철비 아끼느라 두어 시간 거리까지는 걸어다녔던 때라 역을 이용한 적은 거의 없다. 그리고, 우에노 지하철역 하면 배스킨라빈스가 떠오른다. 지하철역이 마루이 지하와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가아끔 아이스크림을 사 먹었었다. 민트초코 혹은 러브포션 어쩌고를.

백민석 님의 책은 거의 다 샀었는데 최근작들은 안 가지고 있다. 헤밍웨이까지 갖고 있다가... 일본에 갖고 갔다가 이사할 때 짐 줄이면서 헤밍웨이는 다른 사람에게 주었다. 헤이, 우리 소풍 간다인지 16믿거나 말거나 박물지인지 재판된 책을 구판과 둘 다 갖고 있다가 재판을 선물한 적이 있고... 어쨌거나 팬이었다. 지금도 팬이라기엔 최근작들을 안 샀고 안 읽었기에 더이상 팬이라고는 못하겠다.
그래도 집에 작가님의 책이 열세 권 있다. 가장 많다.
책을 안 사는 이유는, 5년 전부터 서서히, 내가 뭐든지 안 모으게 됐기 때문이다. 일본 가기 전 수많은 책과 음반과 옷들을 정리했고 가서도 내내 정리벽에 시달렸다. 주로 비좁은 방에 살기도 했고 이사를 자주 다녔기에 더더욱.
언제 떠날지 모른다는 생각(이 집을 & 이 세상을)에 뭘 안 사게 되었다. 뭘 받는 것도 부담스럽고.
살기 싫다는 생각을 하도 해서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꽤 오래 전부터 내 머리를 짓누르고 있었고 일본 가면서 더 심해졌다. 그래서 이번에 돌아와서 얼마 남지도 않은 음반 및 책들을 또 반 가량 정리했다. 음반은 이제 정말 얼마 없다. 들을 만한 게 열 장 정도...? 사진첩도 반 이상을 내다버렸고 20년 이상을 보관해 온 내 중고등학생 시절 오빠들의 사진 및 비디오 등도 버렸다. 엄청나게 많이 모았던 영화 및 전시 리플릿들도 거의 다 버렸다. 거의 20년간 모은 것을 거의 다 버렸다.
아무튼... 뭐 그렇다.

이리야역 하면 떠오르는 건 타코야키집과 마트, 천 엔 헤어샵, 내가 도쿄 갔던 그 해에 없어진 타코집. 은행나무 가로수길 따위.

그 당시 난 정말 공포에 사로잡혀 있었고 새로운 곳에서 새 출발할 수 있었음에도 과거의 망령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었다. 물론 학교 공부도 열심히 하고 알바도 열심히 했지만, 사람 사귀는 걸 제대로 못했다. 그 1년 사이에도 몇 번이고 메신저를 리셋하고... 사귄 친구들이 많았는데 학교 졸업하면서 내가 메신저를 또 리셋했고 지금은 이메일 주소를 교환했던 한 명하고만 연락이 된다. 내가 과거의 망령에서 벗어난 상태였더라면 며칠 폰 꺼 놨다가 켜는 정도로 해결될 수 있었을, 인간 관계에서 비롯한 우울과 공포. 아마도.

나 조만간 또 낯선 곳으로 가는데... 이 나이 먹고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고... 몸 쓰는 일이 두렵다. 사람 만나는 것도 두렵고... 일하는 것도 두렵고... 이런저런 관공서 일처리들도 두렵고...
생각을 많이 해서 스트레스인지... 두렵지 않은 게 없다.
닥치면 해내겠지 하고 있는데...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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