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직 안 돼서 뭐하고 사나 할 때 쓴 글인 듯...
‘인간의 모든 문제는 인간이 먹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다는 데서 비롯한다.’
밥을 굶은 지 사흘째 되던 날 유미는 생각했다. 유미가 회사를 관둔 지도 벌써 반년이 지났다. 처음 한두 달은 뭣도 모르고 그간 못 했던 일들도 하고 해외여행도 한 번 다녀오고 그러다 보니 평소 회사 다니던 때보다 돈을 훨씬 더 많이 써 버렸다. 아껴 쓰면 1년을 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돈이 두 달 만에 반으로 줄어들자 유미는 약속을 잡지 않게 되었다.
유미는 저번 달에 통신 계약을 해지한 스마트폰을 들고 집 근처 체육공원에 나와 와이파이 신호를 잡았다. 당장 돈을 받을 수 있는 일용직 아르바이트를 알아봐야 한다. 아니면 기본적으로 밥을 주는 음식점 일이라거나. 차비가 들면 안 되기에 되도록 가까워야 하고 복장 규정이 있어서 옷을 사야 한다거나 하면 안 된다.
평일 오전, 공원에 나와 있는 젊은 사람은 유미뿐이었다. 연세가 지긋해 보이는 어르신들이 어렵지 않은 운동기구를 이용하며 시간을 보내거나 손자와 놀아 주고 있었다.
유미는 식수대에 가서 물을 마신 후 아르바이트 사이트에 접속해 지역을 설정하고 화면을 훑었다.
‘<편의점 평일 오전> 하루 6시간, 식사 제공’
걸어서 5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 식사 제공이라고 해 봤자 폐기된 도시락을 먹을 수 있는 정도겠지만 그게 어딘가.
“안녕하세요. 아르바이트 모집한다는 글 보고 왔는데요.”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던 사장은 안경을 고쳐 쓰며 유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 그래요.”
손님 한 명이 들어왔다.
“잠깐만 기다려요.”
“네.”
손님은 담배 한 갑을 사서 금방 나가 버렸다.
“어디 살아요?”
“체육공원 근처요. 걸어서 5분 정도 걸려요.”
“아, 좋네. 나이는?”
“서른이에요.”
“음, 결혼은 안 했어요?”
“네.”
“서른이면 취직을 해야지, 왜 알바를 하려고 그래?”
“예?”
들어가는 회사마다 서열에 따른 사내 정치에 적응을 못 해서 관뒀다는 말을 해야 할까. 유미는 지속적인 관계, 관계 유지를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하고 싶었다.
“언제부터 일할 수 있어요?”
“언제부터 일하면 되는데요?”
“그럼 오늘부터 해 볼래요? 알바생이 원래 오늘까지 나오기로 했는데, 어제부터 갑자기 못 나오게 됐다고 해서. 지금 내가 있으니까, 일 어떻게 하는지 보고. 내일이나 모레부터는 혼자 하고.”
유미는 얼떨결에, 생각보다 쉽게 일자리를 구했다. 유미가 찾아간 시간이 마침 오후 1시 50분쯤이어서, 사장은 2시부터 5시까지 세 시간 동안 일을 하라고 했다. 유미가 내일부터 일해야 하는 시간은 새벽 6시부터 낮 12시까지 6시간이다. 오늘의 두 배씩 일주일에 5일간 일을 하면 된다.
유미는 세 시간 동안 사장님을 따라다니며 관찰했다. 편의점 일은 손님이 오면 인사하고 계산하고, 바코드를 찍고 화면에 나오는 대로 진행하고, 물건이 빠지면 채워 넣고, 손님이 뭔가를 먹고 어지르고 가면 치우고, 그런 당연한 것들뿐이었다. 손님은 오래 머물러야 20분 정도였고, 한꺼번에 많이 와 봐야 4~5명이었다. 유미는 이 정도 일이라면 나도 충분히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수고했어. 내일부터 6시에 나오면 돼. 근데 밥은 먹었어?”
“아, 못 먹었어요. 인터넷으로 찾아보고 바로 오느라.”
“식사는 손님 없을 때 눈치껏 폐기한 거 아무거나 먹으면 돼. 삼각 김밥, 샌드위치, 도시락 뭐 이것저것 있는데, 폐기한 건 폐기 찍어서 창고 냉장고에 넣어 놓거든? 이리 와 봐.”
사흘째 굶은 유미의 눈에는 폐기 냉장고가 고급 뷔페처럼 보였다, 라는 건 거짓말이지만 어쨌거나 침이 꼴깍 넘어간 건 사실이었다.
“알바가 안 먹으면 어차피 버리니까, 먹고 싶은 거 있으면 가져 가.”
유미는 마음 같아서는 다 들고 가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삼각 김밥 두 개와 샌드위치 하나를 고르고서 이 정도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내일 올 때 등본이랑 통장, 이력서 들고 오면 돼. 늦지 말고.”
“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유미는 편의점에서 나오자마자 삼각 김밥 하나를 뜯었다. 삼각 김밥과 샌드위치가 든 편의점 봉투를 손에 들고 차디찬 삼각 김밥을 먹으며 집으로, 아니, 체육공원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너무나도 가벼웠다. 실은 너무 어지러워서 몸이 제 몸 같지 않아 발이 들썩이는 것이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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