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도 안 걸린다는 여름 감기에 사람이니까 걸리는 거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더라만
더운 와중에 으슬으슬 춥고 추운 와중에 식은땀이 맺히는 여름 감기는 지독하기만 하다

뒤척일 때마다 터져 나오는 재채기에 딸려 나오는 콧물
염증 반응이랬던가 어쨌던가 하며 하루에도 수십 번 코를 풀어댄다

방 안에 갇히다시피 하여 이리 뒤척 저리 뒤척
에취 훌쩍 팽 으으의 반복

퉁퉁 부은 편도로 침을 삼킬 때마다 즉각즉각 찾아오는 통증에 밤새 잠 못 이루고
어느 샌가 잠드는 걸 포기하고 뒤척이기만 한다

누가 꼭 안아 줬으면 좋겠어 싶을 때마다 혼자서 이불을 둘둘 감고
추웠다 더웠다 반복하는 여름 감기를 달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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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불에 땀이 밴다
흐트러진 이불깃과 내 셔츠

양 인형은 가만히 누워 있다
내 말을 다 들어주고 늘 웃고 있는 내 친구

머리맡과 발 밑에는 택배 상자가 쌓여 있다
이삿짐을 반년째 풀지 않았다
언제 어디로 떠날지 몰라서

어디로 떠날지 몰라서 아팠다
언제는 크게 중요치 않다
어디로 누구를 만나러 떠날지 몰라서 아팠다

초콜릿은 아직 꺼내 먹지 않았다
밸런타인 가방은 이삿짐 위에 고이 모셔져 있다
내 망상의 증거물



눈의 초점이 맞지 않아 세상이 흐리게 보인다.
휴대폰으로 글 쓰는 게 버겁다.
일기도 아니고 시도 아닌 그냥 잡문을 쓰면서
오늘 하루를 되돌아본다.

촉망받는 시인이 되고 싶다? 그런 꿈을 꾼 적은 있다. 시도 열심히 안 쓰면서. 한때 많이 쓴 적은 있었다. 나름 열심히 썼었다. 대학원 가면 좋겠다는 교수님 말씀은 따르지 못했다. 돈 많이 들어서.
인정받는 소설가가 되고 싶다? 마찬가지. 잡지사에서 딱 한 번 답장이 온 적이 있었는데 소설 분량을 좀 늘리라는 내용이었는데 늘리기 싫어서 그냥 내 블로그에만 올려 뒀고
화가가 되고 싶다? 마찬가지. 난 그냥 내 삘대로 막 그리고 싶을 뿐.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 이건 먹고살려고 생각했을 뿐 되고 싶다는 생각은 그다지. 디자인 센스도 없는 것 같고
가수가 되고 싶다? 제일 열심히 한 게 이거다. 사고(난 이제 과거의 아픔들을 사고로 부르려 한다)를 겪으면서도 하려고 했던 게 이거다.
못 이뤄서 제일 슬퍼하는 것도 이거고.
이런저런 가능성들을 스스로 포기한 것을 제일 후회하는 것도 이거다.
내 몇 달치 월급을 들여서라도 하고 싶었던 게 이거다.
가수의 뜻은 노래 부르는 사람. 단순히 가수가 되고픈 거라면 유튜브에 올려도 된다. 법륜스님 말씀을 떠올려 본다. 난 가수가 되긴 되었다. 인기 가수가 못 되었을 뿐.
시? 소설? 등단을 못했을 뿐 쓰긴 했다.
만화? 데뷔를 못했을 뿐 인터넷 웹툰 도전 카테고리에 올려져 있긴 하다.
다 이런 식이다.
고로 먹고살기 위해서는 다른 일을 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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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안 하는 건 일기 쓰는 것만...! 마음이 수시로 바뀌는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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쏟아지는 재난 문자
더위를 조심하란다

엄마에게 물 한 통이라도 챙겨 가라고 여러 번 말했지만 괜찮다며 그냥 나가 버렸다

나는 혼자 앉아 방에 걸린 오래된 사진들을 보며 저때는 행복했던 것 같은데 생각한다

옛날 일을 떠올리려 하면 떠오르는 건 폭력의 기억
내가 이 사람 저 사람한테 두들겨맞았던 것
내가 욕을 달고 살았던 것
뭐 그런 것

좋았던 기억은 대체 어디로 숨어 버린 걸까

가끔 오는 포토 알림
추억의 사진들
저때는 행복했던 것 같은데 또 생각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많이 울었었다
사진은 진실이면서 거짓
사진 속에서 웃고 있는 나와 사진 밖에서 울고 있던 나

사진들을 내다버리길 잘했다
추억하고 싶은 기억을 그즈음 혹은 그 사람과의 마지막; 혼란과 슬픔이 집어삼켜 버린다
기억 상실을 바라며 나는 머릿속에서도 기억들을 지워 나간다

떨쳐내려 할수록 더 들러붙는 기억의 장면들
하나하나 떼내어 불사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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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조 주택의 여름에서는 찜질방 냄새가 난다
백수 주제에 에어컨 켜기가 죄스러워 선풍기로 버티자니 땀이 맺힌다
한여름 며칠은 괜찮겠지 하며 에어컨을 켜 뒀다가 좀 시원해지면 끄고 선풍기를 틀어 둔다

엄마는 오늘도 복숭아를 깎고
나는 오늘도 누워 있다가 복숭아를 먹기 위해 일어나 앉는다

망가진 복숭아를 잔뜩 사 와 손질하는 엄마
나는 같이 깎기가 귀찮아 괜히 복숭아 좀 그만 사 오라고 엄마를 타박한다

내가 하는 집안일이라고는 설거지뿐인데 그마저도 저녁에는 하지 않는다
내가 밥을 먹지 않기 때문에
; 방 밖으로 나가지 않기 때문에

점점 더 아무것도 안 하게 되면서 나는 숨만 붙어 있는 밥벌레 비슷한 게 되어 간다
나는 일부러 나를 몹쓸 인간으로 만들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 내가 죽을 때 아무도 슬퍼하지 않도록

엄마는 부엌에서 묵묵히 복숭아 한 상자를 깎고
나는 방으로 도망쳐 와 이런 글이나 끄적인다

엄마가 남 몰래 우는지 안 우는지 나는 모른다

쓰러져 죽어가던 걸 살려 놨더니 어쩌고 하던 엄마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냥 쓰러져 길바닥에서 죽는 게 나았을 인간인지도 모른다

복숭아 깎다 껍질을 너무 두껍게 깎는다고 핀잔을 들었던 나는
복숭아 깎기를 연습하는 대신에 방구석으로 도망쳐 이런 글을 끄적인다

이 세상에 존귀하지 않은 생명은 없다는데
나는 내가 이 세상에 속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뒤늦게 가서 체면치레로 썩은 복숭아 몇 개를 손질하고는
다시 방으로 돌아와 이런 글을 끄적인다

죽을 날만 기다리는 사람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한 달 두 달 흘려보냈다
; 엄마는 내가 자살 충동을 느끼는 것 같다고 했다
방을 어둡게 해 놓고 아무것도 하고 싶은 게 없다고 한다고

복숭아는 잘 문드러진다
문득 나랑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어둑한 방
손에서 복숭아 냄새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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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달린 방


거울 속에 방이 있다
내가 있는 방과 꼭같이 생긴

유리 너머로 들어가면 방문이 닫힌다
닫힌 방문을 슬며시 열어
내가 있던 방을 바라본다

내가 있던 방 안에는 내가 없다
보이는 건 투박한 방 하나

유리를 깨고 나오니 내가 있다
거울 달린 방 안에 내가 피를 흘리며 서 있다

깨진 거울 앞에 서서 손을 내밀어 본다
거울 속에서 손 내미는 사람
에게 말을 걸어 본다

안녕하세요?
내 말을 실시간으로 따라하는 음성이 낯설다

눈동자를 가만히 바라본다
거울 속의 눈동자 속의 속의 속의 속의 속의...

고개를 돌리고 방에서 빠져나온다
거울 속에는 아무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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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고 싶어지는 날


아무에게도 무엇도 말할 수 없는
말을 꺼낼 수 없는 그런 날이 있다

태어나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아지랑이가 사라지듯 그렇게
사라지고 싶은 날이 있다

말 한마디 꺼내면 다음 말을 하기가 두려워지는
그런 날이 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초조해하는
그런 날이 있다

솔직히 말할게
나 너무 슬프고 아프고 죽고 싶어 그런데 무서워
라고는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기에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그런 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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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개


베개를 몇 번이고 움직여 가며 겨우 잠을 청하는
그런 밤이 있다

목 밑으로 넣었다가 머리만 기댔다가
빼서 그냥 껴안고 있다가
겨우 잠이 드는
그런 밤이 있다

그런 밤이면 베개는 무거워진다
눈물을 빨아들여 뭉치고 무거워진다

눈물의 무게보다 더 무거워진 베개를 배 위에 얹고 잠을 청하는
그런 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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