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케치북, 수채
스케치북, 4B 연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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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빛 꿈
구름 따라 거닐다가
바람 따라 달려 보고
별빛 따라 잠이 든다.
들판 위에 누워 보고
바다 향해 달려 보고
하늘 속에 묻혀 본다.
하얗고 투명하게
때로는 푸르고 맑게
순수함을 느낀다.
우리는 잠이 든다.
맑고 순수한
하늘빛 꿈을 지닌 채로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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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com/watch?v=KV9EP0QvSe0&feature=share8
오늘도 술 취해 시작되는
내 하루는 또 보잘것 없고
어제 느꼈던 그 멋진 꿈은
흔적도 없이 흩어져 가네
몰아치는 파도 속에
지친 나를 느끼고
무거워진 꼬리 위로 멋진
내일을 꿈꾸며 같이 가는 거야
우린 긴 여행을 하는 거야
나의 섬을 찾아서
나의 별을 찾아 함께 가는 거야
좋은 추억으로 남을 거야
뜨거웠던 지난날 우리들의 순간은
여름비처럼 쏟아져 내린
익숙해지는 실패 속에서
아픈 상처와 오래된 조롱이
가슴속에 메아리치네
몰아치는 파도 속에
지친 나를 느끼고
무거워진 꼬리 위로
멋진 내일을 꿈꾸며 같이 가는 거야
우린 긴 여행을 하는 거야
나의 섬을 찾아서
나의 별을 찾아 함께 가는 거야
좋은 추억으로 남을 거야
뜨거웠던 지난날 우리들의 순간은
긴 어둠 속에 또 지쳤을 땐
잠시 멈춰서도 돼
우린 긴 여행을 하는 거야
나의 섬을 찾아서 쉬지 않고
서로 안고서 함께 가는 거야
좋은 추억으로 남을 거야
뜨거웠던 지난날 우리들의 순간은
ㅡ
* 가사 출처: http://genie.co.kr/PXX0Q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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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늘
버스 정류장에서 사진을 찍는 남자를 보았다. 그 남자는 버스 정류장의 풍경을 줌을 당겨서 몇 컷 찍고는 하늘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는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나는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면서 그 풍경을 그저 바라보고 있었다. 가까이 가면서 눈에 들어온 남자의 옆모습은 날카로우면서 매끈한 콧날이 인상적인, 동그라면서 뾰족한 턱선이 묘하게 아름다운 얼굴이었다.
나는 따라서 탄 게 아니라 내가 타야 할 버스였기에 그 남자와 같은 버스를 탔다. 우연히도 그 남자의 뒷자리에 앉았다.
그 남자는 SNS에 <오늘하늘>이라는 해시태그를 달아 사진을 업로드하였다. 아이디는 꽤 길어서 한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나도 모르게 즉각 그 해시태그로 검색을 해 보았다. 시간순으로 하니 그 사진이 맨 위에 떴다. 나는 그 화면을 캡처하였다. 남자의 뒤통수와 내 휴대폰을 번갈아 바라보며 그 남자 계정의 다른 사진들을 보았다. 얼굴 사진은 하나도 없었다. 프로필 사진조차 하늘 사진이었다. 가만히 보니 해시태그도 딱히 달려 있는 게 없었다. 아이디는 나의 줄리엣, 그리고 햄릿에게 뭐 이런 아이디였다.
누구일까, 이 사람의 줄리엣은. 햄릿은 누구지? 본인인가?
나는 어설픈 질투를 느끼며 내릴 준비를 했다. 남자는 내릴 준비를 하지 않고 있었다. 가만히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회색 건물들과 커다란 간판들이 스쳐 지나는, 별 다를 것 없는 거리 풍경을.
내 계정에는 몇 달째 아무 글도 올리지 않고 있었다. 정확히는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죽음만을 기다리는 이 삶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뭐 이런 글들을 썼다 지웠다 하고 있었다.
사진이라고는 꽃 사진 정도였다. 그리고 간혹 내 발 사진 따위를 올렸다 지웠다 하고 있었다. 누가 날 알아볼 수도 알아볼 수 없을 수도 있는 발 사진을.
내가 내리려 하차벨을 누르고 문 앞에 섰는데 누가 내 뒤에 서는 게 느껴졌다. 묵직한 아우라. 따뜻한 체온이 약간 느껴지는 커다란 사람.
나는 내린 뒤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뒤를 돌아보다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고개를 돌렸다.
남자는, 나를 순간적으로 빤히 바라보았다.
어쩌면 모든 걸 들켰을지도 모른다.
남자가 나를 불렀다.
"저기요."
나는 흠칫 하였다. 내가 뒤에서 쳐다보며 자기 SNS 계정까지 알게 된 걸 들켰으면 어쩌지.
"예?"
"교통카드 떨어뜨리셨어요."
남자의 손에는 내 교통카드가 들려 있었다.
"아아, 엇,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교통카드를 받아들며 머뭇머뭇 인사하였다.
이 사람과 지금 헤어지면 다시 볼 날이 있을까. 순간적으로 별의 별 생각이 다 스쳐 지나갔다.
나는 뒤돌아서 갈 길을 갔다. 그래야만 하는 것이었다.
나는 걸어가며 아까 캡처한 스크린샷 파일을 지웠다.
땅만 찍어서 올렸다 지웠다 하는 나와 하늘만 찍어서 올리는 저 사람 사이에 교차점이 있을까.
나는 내가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회사를 관두고 몇 달째 백수 생활 중이던 내가 가까스로 구한 아르바이트 자리다. 근근이 생활비만 버는 정도지만 이걸 관두면 뭘 할 수 있을지 몰라 관둘 수가 없다. 그리고 돈 문제만 빼면 회사보다 여기가 낫다. 스트레스받는 걸로 따지자면. 결국 난 남들이 비웃는 서른 넘어 알바나 하는 인간밖에 될 수 없나 보다 생각하면서도 결론이 그렇게 난다. 다음에 또 누군가가 날 비웃으면 알바라도 하는 게 어디야 하며 나도 콧방귀를 뀌어 줘야지 생각한다.
나는 옷을 갈아입고 나와 계산대 안으로 들어갔다. 중학교 근처라 중학생들이 많이 오고 평소에는 그냥 동네 사람들이 오가는 듯한 그런 편의점이다. 제일 잘 팔리는 건 빵과 삼각김밥 따위.
유리문 밖으로 아까 그 사람이 지나가는 게 보였다. 버스에서 내리고 난 뒤 지나가기에는 시간 차가 좀 있는데 뭘 하고 돌아가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편의점에 들어와 줬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 인연이 될 수 없더라도 단골 손님이라도 돼 줬으면 싶었다.
손님이 없을 때면 매장 정리 등을 하고 그러고 시간이 빌 때면 그냥 유리문 밖을 바라보곤 한다. 그 남자는 내가 아르바이트를 하는 다섯 시간 사이 몇 번이고 유리문 앞을 지나갔다.
대체 뭐하는 사람일까.
다단계 직원? 보험? 뭐하는 사람일까.
그나저나, 단지 얼굴이 곱상하게 생겼다는 이유로 난 사랑이란 것에 빠져 버린 걸까?
한심하다. 그러니 나이 서른 넘어 회사 관두고 이직도 못하고 겨우겨우 다른 동네 편의점 아르바이트나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동네에 사람이 별로 안 사는 건지 몇 달이고 공고가 올라와 있던 편의점. 이력서를 넣었는데 연락이 오지 않아 내가 전화를 걸어 몇 주 만에 합격 통보를 받은.
어쨌든 이제는 돈 벌어 먹고살 수 있어 다행이다 생각하며 저 남자는 뭐하는 사람일까 생각하고 있는데 남자가 유리문을 열고 들어왔다.
"디스 한 갑 주세요."
날 알아보긴 했으려나 싶으면서도 알아봤다 해도 아는 척은 안 하겠지 싶어 우울감을 느끼며 디스 한 갑을 건네고 계산 처리를 했다.
디스. THIS. 이것. 여기 내 눈 앞에 있는 이것.
이 사람은 영영 떠나가겠지.
싶었는데 가게 앞 흡연소에 앉아 담배를 피운다. 한 갑을 다 피울 기세다.
청소를 해야겠다 싶어 나가 보니 재떨이에 이미 꽁초가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잠깐 이것 좀 치워도 될까요?"
남자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예."라고 대답한다.
나는 쓰레기 봉투에 재떨이를 넣고 뒤집어 꽁초를 턴 뒤 재떨이를 제자리에 돌려 놓았다.
"쓰레기는 내가 치워도 되는데."
고개를 돌리니 다음 타임 아르바이트 아저씨가 서 계셨다.
"아, 네. 벌써 시간이..."
"퇴근할 준비해."
"예."
남자는 그냥 담배를 피우고 있다.
이렇게 난 하루 동안 사랑에 빠졌다 집에 가서 발 닦고 자는 건가.
옷을 갈아입고 나와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는데 가게를 흘긋 돌아보니 남자가 뒤따라온다.
"저기요."
"네?"
"혹시 몇 주 전에 동네 매물 사이트에서 저한테 책 한 권 나눔하셨던 것 기억 나세요?"
"... 아... 혹시 후드티 뒤집어쓰고 나오셨던 분이신가요?"
"예."
"책 수십 권을 나눔한 터라 바로 기억을 못했나 봐요. 그런데 책에 무슨 문제라도 있던가요?"
남자가 그제서야 웃는다.
"그게 아니라 책에 밑줄 그어 놓으신 부분이 너무 와닿아서요."
중고로 팔아 봤자 돈도 안 되고 스트레스만 받아 그냥 다 나눔한 책 중 한 권이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책인데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책이었다. 한 권을 나눔한 건 이 사람뿐이었다.
"제가 좋아하는 책이었는데 저도 예전에 나눔했어서, 근데 또 읽고 싶어졌던 차에 나눔하시는 걸 보고 받아갔었는데요. 제가 좋아하는 부분에 밑줄을 그어 놓으셨더라고요."
"죄송해요. 형광펜으로 그어서 지울 수가 없어서... 음..."
머릿속이 혼란스럽다. 뭐지? 공감대 형성?
아마도... 죽고 싶을 때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먹으면 더 맛있게 느껴진다, 일부러 슬픔을 찾아다닐 필요는 없다... 이 두 문장이었을 것이다.*
이 사람도 슬픈 걸까. 하늘을 바라보고 하늘 사진을 올려대는 이 사람도. 땅만 쳐다보다 꽃 사진을 찍어대는 나처럼...?
"친구가 되고 싶어서요. 저도 백수 생활하다가 지금 옆 동네 아는 분 호프집에서 알바하고 있지만... 그러니까... 돈은 별로 없지만 그냥 친구라도 되고 싶다고 생각하던 차에... 기분 전환 겸 낮에 나와 봤는데 우연히 만나게 돼서 따라와 봤어요."
요즘 세상에는 하도 무서운 일이 많아 이런 것도 다 경계해야 한다고는 하지만 백수 생활 시작과 동시, 아니 서서히, 친구를 다 잃어 버리고, 아니, 내가 도망쳐 버린, 그래서 어쨌거나 결국 친구를 다 잃은 나로서는, 이 사람과 친구가 되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들 수가 없다는 생각을 하였다.
순한 눈.
순해 보인다고 다 믿을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제가 월급 타면 술 한 잔 하러 가게 호프집 주소 좀 알려 주실래요? 검색하면 나오나요?"
"ㅇㅇ 비어예요. 이 옆 동네예요. 전 이제부터 알바하러 가는 건 아니고... 괜찮으시면 오늘 같이 한잔 하러 갈까요?"
"아직 월급을 못 받아서... 음... 동네 가서 슈퍼 가서 한 캔씩 사도 될까요?
남자가 또 웃는다.
우리는 같이 버스를 타고 같이 내렸다.
아직 저녁 여섯 시밖에 되지 않았다. 맥주 한 캔쯤 괜찮겠지.
어쩌면 이 사람과 평생 친구로 지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관두지만 않으면 이 알바는 언제까지고 할 수 있는 거려나, 나이 더 먹으면 노령연금이 나오겠지 삼십 년 뒤인가? 이런 생각을 하며 나는 슈퍼로 들어갔다. 친구를 사귀는 데도 돈이 필요하니까. 살아 있으려면 당연히 그러니. 이런 말로 넘어가기에는 나는 돈 걱정을 너무 많이 하긴 하지만 뭐 어쨌거나.
살아 있는 동안 이 사람과 친구로 지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나는 맥주캔 하나를 집어들었다.
ㅡ 끝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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