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걸; 살아 있어라 운명 따위 없으니

                                                      

구걸하듯 삶을 살긴 싫었다
개 맞듯 맞아도 참았다
먹을 게 없어 쓰러져도 참았다
내가 한 짓이 아닌 짓에도 욕을 먹어도 참았다
그저 살아 있을 뿐인 내게 누군가들이 욕을 퍼부어도 참았다
내 인생을 망치려 들고 망쳐 놓아도 참았다
내 인생이 망가져도 참았다
약간의 잘못에 죽음을 떠올리면서도 참았다
하나의 실수에 죽을 만큼 괴로워하면서도 참았다
손목을 그어가며 참았다
벽에 머리를 찧어가며 참았다
내 스스로 내 뺨을 때려가며 참았다
누군가가 내게 자해를 하라 하면 피가 나도록 나를 때려가며 참았다
무서움을 온몸으로 느끼며 참았다
그런 게 삶이라 여기며 참았다

이제 더는 참고 싶지가 않다
아니 더는 참을 수가 없다
그럴 힘이 없다

지쳐 쓰러졌을 때에도 살고 싶다는 생각이
이제서야 든다
죽어 버리자 이대로 굶어 쓰러져 지쳐 쓰러져
죽어 버리자
이 생각이 아니라
살자 어떻게든
이 생각이 이제서야 든다

목숨을 구걸하는 게 아니라
그냥 살아 있고 싶을 뿐이라는 생각이
이제서야 든다

살아 있어라
어떻게든
살아 있어라
너에게도 이 말을 해 주고 싶다
살아 있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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