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빔면


샤워 후 얼굴에 땀이 맺히는 계절
이 되면
비빔면이 땡긴다

비빔면이 땡길 걸 대비해 미리 사 둔
비빔면을 끓인다

물을 따라낼 때 딸려 나가는 라면
부스러기들
이 아깝다

매콤한 비빔면 하나에 달걀을 곁들여
먹고 있노라면
내가 꼭 엄청난 부자가 된 것만 같다

닭장에서 생을 지새우는 닭이
낳아 여기까지 온 달걀
을 두 개나 넣어 비빔면을 먹고 있노라면
걱정이 사라진다
(내가 꼭 그 닭 모냥으로 생을 지새워 왔다는 걸 생을 지새워야 한다는 걸 까마득히 잊은 채)

설거지를 할 때면 다시금
밀려드는
삶에 대한 걱정들
이 딸려 나간 라면 부스러기처럼
사라졌다
가 설거지를 하고 난 뒤 남아 있는 퉁퉁 분 라면 부스러기처럼
되돌아왔다가
그것들을 쓰레기통으로 처넣을 때면
다시 사라졌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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