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파수 잡기
아픈 눈을 뜨면 지지직
라디오 주파수 잡는 소리가 들려요
눈꺼풀에서도 지지직 소리가 나는 것만 같아
희미한 아침 햇살에 따끔거려요
이마 안쪽 벽을 타고 지지직
지난 밤 꾸다 만 꿈이 흘러가요
잡고 싶기도 하고 버리고 싶기도 한
신나고 괴상한
왼쪽 가슴 저 밑을 닳고 닳은 손톱 끝으로 간지럽히는
온전히 눈을 뜨면 날아가 버리는
저 먼 세상에 살고 있는 또 다른 내 모습은 아니었을까
그리워져 서글퍼지는 꿈
내 귀는 끊임없이 주파수를 잡아요
잡아도 잡아도 잡히지 않는
매일 밤 눈을 감으면 같은 곳
눈을 뜨면 사라지는
뿌연 잔상 위로
시리고 뜨거운 것이 주르륵
흘러내려서 두 볼에 말라붙어요
그곳의 나도
이곳의 나를 희미함으로 만나며
이유도 모르면서
눈물을 흘리지는 않을까
꿈속의 내게는 이 글을 쓰는 내가 꿈이고
나의 하루를 매일 밤 지켜보며
눈을 뜨면 사무치는 슬픔으로
가슴 한쪽을 부여잡고 울까요?
심장을 만질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아프고 간지러운 내 심장을 토닥토닥
어루만질 수 있다면
나는 늘 애꿎은
왼쪽 가슴을 쿵쿵 두들겨요
아파
아프지만
글/운문
- 주파수 잡기 2023.05.19
- 옆집 개(누군가의 인생) 2023.05.19
- 보통 사람의 휴일 2023.05.19
- 한낮의 침묵 2023.04.26
- 올해 쓴 시들. Dear my muse. 2023.04.25
주파수 잡기
옆집 개(누군가의 인생)
옆집 개(누군가의 인생)
그르륵 그르르르륵 그륵
옆집 개가 뭔가를 긁어대고 있다
사지를 쭉 뻗으면 신장이 사람과 비슷할 듯한 옆집 개는
뒤뜰이라고 하기가 민망한 시멘트 바닥 위에서 맴맴 돌거나 낮잠을 자거나 가끔 울거나
옆집 아저씨는 한낮에 개를 자꾸 때린다
때리면서 밥을 준다
아무나 보고 짖지 말라면서 때린다
아저씨보다 이빨이 튼튼할 옆집 개는 낑낑거리기만 한다
옆집 아줌마는 한밤중에 개를 때린다
뭐라뭐라 소리를 지르면서 때린다
나는 그저 잠을 청하며 가만히 듣고 있다
옆집 개는 제 몸의 10배는 겨우 되려나 싶은 시멘트 바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시멘트 바닥의 끝에도 미치지 못하는 줄에 매여서
가끔 옆집 개와 눈이 마주치면
녀석은 그 까만 눈동자로 나를 아주 빤히 쳐다보고
그럼 나는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들어 고개를 돌리고
ㅡ
몇 년 전 쓴 시
보통 사람의 휴일
보통 사람의 휴일
아침에 일어나 세수하고
뒹굴거리며 책을 읽고
물을 마시고
햇살에 눈을 비비며 낮잠을 조금 자고
나른한 배를 쥐어잡고
구토를 한다
이 빌어먹을 세상
하면서 뉴스를 본다
동네 놀이터에 나가 타지도 않을
놀이기구들 사이를 걷다
집으로 돌아오는 사이에 해가
저 멀리로 사라진다
별들이 사라진다
사라지지도 않는다
밤은 컴컴하지도
컴컴하지 않지도 않다
풀벌레 소리 대신 술 취한 사람들의
술주정 소리
ㅡ
2023.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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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의 침묵
RM 씨 인스타 스토리에 올라온 한용운 님의 「고적한 밤」에 대한 답시
「한낮의 침묵」
한낮의 그늘은 침묵한다
그늘의 담배 연기는 침전한다
구름 속으로
눈을 감고 올려다보는 하늘은 암흑이다
스삭스삭 한낮의 침묵 소리
나뭇가지와 나뭇잎이 맞부딪히는 소리
너와 내가 마음과 마음으로 맞부딪히는
한낮의 침묵 소리
침묵에서도 소리가 난다
너와 나의 마음이 울려 소리가 난다
먼 산 너머 마음에서 메아리가 다가온다
저 산 너머 구름에 실려 메아리가 가까이 다가온다
내가 보내는 대답은 파아란 하늘에 퍼져
너에게로 다가갈 것이다
나는 너의 대답을
한낮의 침묵 속에서
기다릴 것이다
끝없는 한낮의 침묵이
침전하여 내 온몸으로 되돌아올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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