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2019.8.12.)
에세이 '가난은 어디로 간 걸까' ㅡ 무라카미 하루키.
원제: '貧乏はどこに行ったのか?' - "村上朝日堂 はいほー!" 중에서
자랑할 건 못 되지만, 나는 예전에 꽤 가난했던 적이 있다. 갓 결혼했을 무렵으로, 우리는 가구도 아무것도 없는 방에서 조용히 살고 있었다. 난로조차 없어서, 추운 밤에는 고양이를 껴안아 온기를 얻었다. 고양이도 추우니까 필사적으로 인간에게 매달려 있었다. 이쯤 되면 이제 공생 같은 것이다. 거리를 걷다가 목이 말라도 찻집에라고는 들어간 적도 없었다. 여행도 한 적이 없었고, 옷도 사지 않았다. 그저 그냥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나 그로 인해 불행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돈이 있었으면은 하고 물론 생각이야 했지만, 없는 건 없는 거니까 뭐 어쩔 수 없지 여기고 있었다. 어쩔 도리도 없이 돈에 쪼들려 아내와 둘이서 밤중에 그저 머리를 떨구고 길을 걷다가 만 엔 지폐를 세 장 주운 적이 있었다. 나쁘다고 생각은 했지만, 파출소에 갖다주지 않고 그 돈으로 빚을 갚았다. 인생도 버린 게 아닌가, 하고 그때 생각했다. 우리는 젊어서, 세상 물정을 거의 몰라서, 그리고 서로 사랑하고 있어서, 가난 따위 전혀 두렵지 않았다. 대학을 나왔지만, 취직 따위 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여 그저 좋을 대로 살고 있었다. 객관적으로 보면 사회에서 벗어나 있었던 것이지만, 불안이라고 할 만한 것도 없었다.
그럼에도 뭐, 어쨌거나 가난했다.
그 시절의 이야기를 하자면 끝이 없다. 그런 일도 있었지, 이런 것도 했지, 하고 이야기가 밑도 끝도 없이 쏟아져 나온다. 이른바 가난 자랑이라는 것이다. 옛날에는 사람이 모이면 다들 이런 류의 가난 자랑을 했다. 누군가가 자기가 전에(혹은 지금) 얼마만치 가난했는지(한지) 하는 이야기를 한다. 그러면 다른 누군가가 "농담 아니야, 그런 건 가난 축에도 못 끼어" 하고 말을 꺼낸다. "나 같은 놈은, 일주일 동안 고양이 사료를 먹고 살았다고"라나 뭐라나. 이건 나 개인이 놓여 있던 환경의 특이성일지도 모르겠으나, 내 주변에는 가난한 인간이 한가득 있었다. 그들은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가난했다. 코바야시 군은 먹을 게 없어서, 표고버섯의 심을 그릇 가득 먹고서 배를 앓았다. 제대로 된 인간은 그런 걸 먹지 않는다. 호리우치 군도 무진장 가난했다. 언제나 속을 비워서 비틀비틀 비틀거리며 걸어다녔다. 얼마 전까지(고작 4, 5년 전까지) 내 주변에는 차를 갖고 있는 인간이라고는 거의 없었다. 있었다고 해도 엄청나게 오래된 세 모델 전의 카로라(*토요타 자동차의 차 모델명. 우리나라 현대 소나타 정도인 듯)라든가, 지저분한 라이트에스(*토요타 자동차의 차 모델명. 우리나라 기아 카니발 정도인 듯)라든가, 그 정도의 차밖에 갖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그러한 것이 당연하다는 듯 우리는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어느 틈엔가 모두들 기이하게도 가난하지 않게 되어 버렸다. 내 주변에는 벤츠를 갖고 있는 인간이 몇 명인가 있다. BMW를 갖고 있는 인간도 있고, 볼보를 갖고 있는 인간도 있다. 내 주변에 부자인 지인이 늘어난 것은 아니다. 옛날부터 알고 지내던 인간이 모두들 어쩌다 보니 가난하지 않게 되어 버린 것이다.
이건 뭐 나이에 따른 것이겠지. 모두들 나이를 먹어서, 어쩌다 그리 돼 버린 것이라고. 하지만 그와 더불어 세상의 풍조라는 것도 꽤 큰 요소가 아니었을까 하고 나는 생각한다. 정리하자면, 세상이 가난이라고 하는 것을 그다지 쳐주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가난이라고 하는 것이 그저 돈이 없는 비참한 상황으로서밖에 여겨지지 않게 되어 버렸다. 그러니까 가난 자랑 따위 이제는 전혀 의미를 갖지 않게 되어 버린 것이다.
가끔 젊은 여자들과 만나서 얘기하면ㅡ변명하려는 건 아니지만, 정말로 가끔입니다ㅡ 그녀들은 딱 잘라 가난해지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건 "희망"이 아니라, "신념 표명"이다. 상당히 딱 잘라서. "가난이 싫은 건가?"라고 내가 물으면, "완전 싫어"라고 말한다. "무라카미 씨는 옛날에 가난했었나요?"라고 물어와서, "그래요"라고 말하면, 그녀들은 대체로 꽤나 곤란한 표정을 짓는다. 그녀들에게는 가난이라고 하는 상황이 제대로 구체적으로 상상되지 않는 것이다. 상상할 수 없으니까 돌연 곤란해지는 것이다. 젊은 여자들을 곤란하게 해서는 나도 역시 난감해지니까, 그 시점에서 나는 서둘러 화제를 바꿔 버린다. 실수로도 가난 자랑 따위 입에 올리지 않는다. 그런 걸 얘기해 봤자 그저 언짢은 분위기가 될 뿐이다.
가난은 도대체 어디로 가 버린 걸까? 하고 나는 때때로 생각한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정말로 늙은이 냄새가 난다고 여겨질 것 같고, 미움받을 것이라고 생각되지만, 옛날의(20년 전의 *이 책이 출간된 게 1989년이므로 여기서 20년 전이라 함은 1969년 혹은 그 이전) 여자들은 "가난 따위 절대 싫어"라고는 그다지 입에 담지 않았다. 적어도 내 주변에 있던 여자들은 그랬다. 그녀들은 돈보다는 일단 납득 가능한 삶을 살고 싶다고 하는 것이 우선이었던 것 같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실제로 그런 삶을 사는 여자가 많았다. 물론 그렇지 않은 여자도 한가득 있었다. 외제차를 모는 남자가 아니면 데이트 하지 않는다고 하는 여자도 있기는 했다. 하지만 그런 경우는 어디까지나 소수여서, 적어도 나와는 그다지 상관이 없었다. 내 주변에 있던 보통 여자들은 차가 없어도 돈이 없어도 그런 건 신경도 쓰지 않았다. 내게 돈이 없다면, 데이트를 해도 상대방이 돈을 내 주었다. 그런 건 부끄러움도 무엇도 아니었다. 우리가 바라고 있었던 것은 좀더 다른 것이었다. 물론 그 누구도 기꺼이 가난해지고 싶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예의 통과의례이지 않은가 여기는 정도로 우리는 마음을 접은 채 생각하고 있었던 게 아닌가 한다. 그리고 실제로 그랬다. 실제로ㅡ이런 걸 쓰는 것이 무척 부끄럽지만ㅡ 가난은 참으로 즐거웠다. 여름의 오지게 더운 오후에 머리가 멍해져 찻집에 들어가 냉방을 쐬며 아이스 커피를 마시고 싶어도, 아내와 둘이서 "참자"라며 견디어 겨우겨우 집에 돌아와 보리차를 벌컥벌컥 마신다…… 그것은 그 나름대로 무척 즐거웠다. 그것은 지난 일이니까 즐겁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그것은 돈과는 상관없는 것이다. 그것은 말하자면 상상력의 문제다. 상상력이라고 하는 것이 있으면, 우리는 대부분의 일을 헤쳐나갈 수 있다. 예컨대 부자로 있든지 거렁뱅이로 있든지.
가난은 도대체 어디로 가 버린 걸까? 가난은 사라져 버린 걸까?
일요일 아침에 집 근처를 산책하고 있으면, U 네크라인 셔츠에 축 처진 버뮤다 반바지, 고무 비치 샌들 차림의 아버님이 아파트 주차장에서 처량할만치 하얀 벤츠를 세차하고 있는 광경을 볼 수 있다. 그런 걸 보면 나는 "어이, 아재, 거 퍽 없어 보이네"라고 생각한다. "그건 당신 개인적인 편견 아니야?"라고 아내는 말하지만서도.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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